작성일 : 21-08-05 08:58
행함 실은 기독교 열차의 탈선 이유(똑같은 환경의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을 해도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글쓴이 : 동그리
조회 : 261  
기독교에 있어서의 행함 없는 믿음은 팥소 안 든 찐빵하고는 다릅니다. 지금도 가끔 도로변이나 시장 같은 데에서 큼직하게 네모 반듯이 썰어 팔고 있는 옥수수 빵 같은 팥소 안 든 찐빵을 볼 수 있는데, 팥소가 들지 않았다 해서 어엿하지 못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는가 합니다. 먹는 사람의 취향문제인 것이지요.
그러나 기독교의 신앙과 행함은 그렇지 않습니다. 행함 없는 믿음은 형해뿐이라고까지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약2:17)이라 했으니 왜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사실 우리 기독교가,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욕을 먹는 것도 이 행함이 없거나, 있다 해도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면도 있어 신실한 성도들은 행함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교회에서 그 지체로서의 할 일을 하기도 하고, 사회봉사도 하고, 불우한 이웃을 돌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실 일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같은 일을 한다 해서 다 착한 행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착한 행실이 분명하다 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눅17:34-35)
똑같은 환경의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데려감을 받고 어떤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는 것이지요. 재림 때에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그렇게 갈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외적으로 보면 똑같은 교회봉사나 불우이웃돕기 같은 착한 일을 하는데도 어떤 마음의 자세로 하느냐 하는 데에 따라 결과는 이토록 극명하게 갈리게 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교회 일을 정말이지 헌신적으로 능력 있게 잘하는데도 그의 주변은 항상 소란스럽고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질 않습니다. 소위 트러블메이커인 것이지요. 그러나 그다지 열심인 것 같지도 않고 능력 또한 출중한 것 같지도 않은데 그의 주변엔 항상 은혜롭고 따사로움이 감도는 경우도 있습니다. 피스메이커인 것입니다.
그런데 후자라고 해서 다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자기 자랑이 된다면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을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자랑하지 않는다 해도 마음의 어느 한 구석에라도 그런 것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것은 좋은 현상이 못됩니다. 자만심의 첫 단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높이고자 하는 자존감도 좋은 것은 못됩니다. 자기를 존중하여 높이는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2)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들 대개가 자기 자식을 높게 기르고자 하는 자긍심도, 그보다는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 믿음의 사람들 하나하나는 한없이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성삼위 하나님을 자신의 안에 주인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소중한 존재들인 것이지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보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렘11:45, 벧전1:16)라 하셨는데, 우리는 이미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안에 모시고 있으니 거룩한 것입니다. 값싼 질그릇일지라도 안에 보배를 담고 있으면 그 그릇은 보배로서의 값어치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의롭지 않은데 믿음 하나로 인해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 것(이신칭의)과 같은 이치이기도 합니다. 사실 의인이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믿음에는 의로움이 들어 있듯이, 우리가 실제로는 하나님처럼 거룩하진 못하지만 다소라 할지라도 그 거룩함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거룩함’이 의미하는 것이 세상의 그것과 믿음에서의 그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거룩함’은 위대할 뿐 아니라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고결한 것, 높고 위대하고 고결함이 극에 달할 만한 상태를 말하나, 기독교 신앙에서의 ‘거룩함’ 히브리어 ‘코데쉬(קֹדֶש)ׁ’는 ‘분리하다’ ‘구분하다’를 뜻합니다. 세상의 속된 것, 바르지 못하고 옳지 못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정결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말하는 거룩함처럼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의지에 성령님의 도우심이 뒷받침한다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인 것이지요.
그런데도 우리 기독교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세상풍조가 교회로 밀려들어 성도들의 마음에서 주인노릇을 함으로 세상과의 구별이 되지 않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세상보다도 더 타락한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믿기 전의 옛사람에게 다시 주인자리를 내어 준 탓이지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대가 사도 바울보다 잘났다는 말이니까?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인되기를 바라시는 것도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바라신다고 우리가 의인이 되고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것이 사실이고, 인간이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지요.
그렇다면 의인되기를 바라고 거룩하게 되기를 바라며 달려가라는 말이냐고요? 그러나 그도 아닙니다.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수님을 바라보며 달려가라는 말입니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천양지차가 있습니다. 전자는 푯대가 의로움과 거룩함에 있는 반면 후자는 성부와 성자 하나님께 있습니다.
의인되기를, 거룩하게 되기를 바라며 달려가는 것과,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성부성자하나님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것은 그 결과가 같게 나타나는 것 아니냐고요? 그건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종교입니다. 전도를 얼마나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되는데, 이를 아니라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르지 못한 과정은 질적 성장을 보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든 우리는 의로워져야 되고 거룩해져야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푯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푯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의로워져 가게 되고 거룩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요 하나님만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보입니다. 사람이 보입니다. 사람이 보이되 사람으로 보입니다. 선과 악도 보이고 옳고 그름도 보입니다. 참된 행복도 보이고 불행도 보입니다. 내가 가야할 인생길도 보입니다.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하는 길이 보입니다.
오늘의 기독교가 타락하고 비난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아닌 허깨비를 하나님으로 잘못 본 탓이고, 진짜 교회를 보지 않고 건물을 교회로 보아 그 치장에 물심양면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붓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높이 올라가고 교인수가 많으면 큰 교회일 뿐 아니라 좋은 교회가 됩니다. 목회자뿐 아니라 교인들의 목에까지 힘이 들어갑니다.
물론 건물이 크고 교인수가 많은 것 자체를 나물랄 수는 없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성부성자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힘껏 달려감으로 얼마나 의로워져 가며 거룩해져 가고 있느냐를 생각해 보자는 것일 뿐입니다.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을 돌려드리고 있는가를 보자는 것일 뿐입니다.
규모가 크고 작고를 떠나 우리 교회는 주위로부터 칭찬이 자자하다고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웃으로부터 사람살맛이 나게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런 교회, 그런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그런 성도들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무리 사심 없는 순수한 신앙심으로 교회 일을 하고, 불우이웃을 돕고, 헌신적인 삶을 산다 해도 그로 인해 자긍심을 갖고 자존감을 높인다면 안 될 일입니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라도 한다면 큰일입니다. 구원으로 말할 것 같으면 믿음 아닌 행위 구원이 되는 것이지요.
내가 착한 것이 어디 내 힘으로 된 것입니까. 착해지고자 하는 의지에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의지 또한 성령님께서 주신 것 아닌가요. 그러니 나는 자랑할 것도 내 세울 것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말입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고전15:8) 같다 한 사도 바울보다 낫습니까. 그는 좋은 가문의 혈통과 최고 학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며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까지도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된 것이라 말합니다.(고전15:10)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같은 마음의 자세로 일하며 살라 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랑 가운데 있는가를 알려면 내가 나 된 것이, 내가 한 일들이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라는 의식이 자신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가를 보면 됩니다. 그러면 행함 실은 나라는 기독교 열차는 탈선할 리가 없습니다. 신앙의 궤도를 시원스럽게 달리게 됩니다.

동그리 21-08-05 09:47
 
'하나님만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보입니다. 사람이 보입니다. 사람이 보이되 사람으로 보입니다. 선과 악도 보이고 옳고 그름도 보입니다. 참된 행복도 보이고 불행도 보입니다. 내가 가야할 인생길도 보입니다.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하는 길이 보입니다. ' 제가 선한일을 하고 옳은일을 하더라도 그게 나의 의지가 아니고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말씀에 이제까지 자만하며 살아오진 않았나 되돌아보며 겸손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규연애비 21-08-05 16:32
 
교회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신앙심이 깊은게 아니고 성도의  한사람이 내이웃으로 부터 기쁨과 행복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겠습니다
훈훈 21-08-09 15:51
 
주변에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나누는 것이 진짜 큰 믿음이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닐까 생각 해봅니다.
율리아나 21-08-09 18:34
 
진정으로 하나님이 바라시는게 어떤마음의 자세로 이웃을 사랑해야되는지를 알게 되었고  자기자신을 낮추는 자세로 살아가야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두필님 21-08-15 20:18
 
어찌 보면 제가 지금 공동체에 있을 수 있어 좋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보살핌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입니다.
백선희 21-08-16 23:15
 
선해지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본인인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의지를 주신 하나님의 보살핌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일상속에서 매순간마다 느끼고 있습니다. 경솔하지 않고 자만하지 않으며 항상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로케 21-08-20 21:42
 
항상 바른길로 가고자하는 그 마음가짐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언제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하여 노력하고 다듬어 나가고 싶습니다.
임지수 21-08-22 21:56
 
보여지는것 보다 중요한건 내면이라는 말씀에 깊은 공감입니다. 자신을 낮추며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겠습니다.
영미 21-08-23 23:00
 
내 스스로의 마음으로 좋은 행함을 하면
겉으로 보여지는 것도 좋게 보겠지만,
그보다는 내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 분이 주관하신대로 가는 길이라면 그 어떤 행함도 올바른 행함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봄날 21-08-24 21:10
 
주님의 보살핌으로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음에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윤지 21-09-08 15:38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고 어리석은 존재라고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스스로 잘 다스리고 겸손한 마음가짐을 갖기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뜻을 따르면 언젠가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행복가득 21-10-12 17:59
 
내가 하나님을 알기전에는 죄악가운데 있었고 죄인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살아야겠습니다.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내면에 채우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사랑으로 실천하면서요
이강현 21-10-17 18:21
 
하나님을 알기전에는 나자신이 죄인이다. 사죄을 드려 하나님께 나태하지않고 나자신에 대해서 회계하는 시간을 갖고 기도를 매일 드려야될거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