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8-26 15:11
기도하다가 죽고 싶다니 누구를 위해서인가(새벽기도가 신앙의 바로미터인가)
 글쓴이 : 동그리
조회 : 231  
기도하다가 그대로 죽고 싶다. 지금은 거의 들을 수 없게 됐지만 전에는 그리 말하는 교인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은 설교하다가 강대에서 쓰러져 그대로 죽는 것이 소원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여러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오래전부터 이런 말이 머리에 떠오를 때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하다가 잠이 드는 것처럼 그대로, 아니면 설교하다가 강대에서 쓰러져 그대로 데려가심을 받는다면 시쳇말로 정말이지 폼나는 일이지요. 영광스런 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요, 폼은 누가 나며 영광스러운 건 또 누굴까요. 그런다고 하나님께서 폼이 나실 리 없고, 영광스러운 건 그리하는 당사자가 아닐까요.
물론 그런 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당사자가 어떤 마음이었느냐에 따라 다르지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삼상16:7)이시니까요.
어떻든 그런 걸 바라는 자체는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가 폼나고, 자기의 영광을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꼭 그리 죽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열악한 환경의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다 병을 얻어 죽거나 무엇인가의 사고로 죽는다면 은혜 아닌 저주에 의한 것이라 할 것인가요. 꼭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붙잡혀 옥살이를 하다가 죽어야만 순교가 되는 것일까요.
저는 며칠 전 제가 잘 아는 교회의 팔순을 넘긴 장로님 한 분과 통화를 했는데, 당신은 세상의 때가 많이 묻었다 했습니다. 그러며 쉬지 않고 계속 새벽기도에 나가는데, 죽는 날까지 그러는 것이 소원이라며 그리되게 해 주시라 기도드린다 했습니다. 
저는 하나의 기대를 가지고 장로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신에게 묻은 세상의 때를 벗기게 하여 주시라 새벽마다 기도드린다며, 그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였습니다. 그러나 기대는 엇나가고 말았습니다. 장로님의 말씀은 새벽기도 그 자체가 좋은 신앙의 표본이 된다고 하는 것 같은 그런 거였습니다. 누구누구는 새벽기도를 쉬는 일이 없을 정도로 신앙이 좋다 하셨습니다. 누구는 다른 사람을 새벽기도에 데리고 나올 정도로 정말 신앙이 좋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새벽기도를 비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성장에는 새벽기도의 공이 컸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무슨 내용의 기도를 어떤 마음의 자세로 드리느냐에 있는 것이지요.
저는 정년퇴직을 하고 고향 전주로 이사를 했는데, 당연히 교회를 정해야 했습니다. 저와는 달리 집사람은 집에서보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기를 바랐음으로 되도록 집 근처 교회로 정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해 봤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대형교회까지는 아닐지라도 교인수도 꽤 많고 규모 또한 큰 편인 그 교회 목사님은 설교에서, 집에서 100시간 기도하는 것보다 교회에서 1분 기도하는 것이 더 낫다 했습니다.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성능 좋은 거울이 있다면…

저도 전에는 기도를 주로 교회에 가서 드렸습니다. 그러나 새벽이 아니라 밤중에 가서 드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새벽미명에 기도하셨는데, 그건 성경적이 아니라고요? 아니지요. 새벽에 기도하신 일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 유명한 겟세마네 기도도 새벽에 드린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저는 그런 기도마저 지금은 교회가 아니라 집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다른 교인들이 옆에서 큰소리로 하는 기도 때문에 집중이 잘 안되기도 하고, 교회에 오가는 시간이 아깝기도 해서입니다. 새벽기도가 아니라 새벽예배가 주인 것처럼 생각되는 교회도 있습니다. 기도드리는 시간보다 예배에 소요되는 시간이 더 길기도 한 것이지요.
저는 자기 방을 골방삼아 기도를 드립니다. 자기 방보다 더 좋은 기도의 골방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예 한 쪽 벽면에 붙여 두툼한 요를 둘로 접어 깔아놓고 그 위에 큼직한 베개를 벽에 대어 세워 놓습니다. 기도자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자세는 눕는 것을 빼고는 가장 편하게 합니다. 무릎은 마음으로 꿇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죽는 그날까지 이 기도를 쉬는 일 없이 드리게 해 주시라고 빕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장로님과 비슷한 기도를 드린 것이지요. 다만 그 초점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라는 말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말하자면 제게 묻은 세상의 때를 벗겨 주시라는 기도인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성삼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의 철저한 종이 되어 그만을 바라보며 그 뜻만을 따라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섬겨도, 사회봉사를 해도 나를 의식하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뜻만을 따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만을 푯대도하여 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러려면 끊임없는 자기 점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 했는데, 자기의 그 ‘중심’, 그러니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지요. 교회를 포함한 모든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의 원인을 한번 보시지요. 자기성찰이 없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 대부분 아닌가요. 역지사지의 마음만이라도 갖는다면 내로남불과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 아닌가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보기는 하지만 좋은 점만 보고, 심하면 나쁜 것까지도 좋은 점으로 둔갑을 시켜 봅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남은 눈에 색안경을 쓰고 보지요. 목사님들도 설교를 할 때면 그 내용이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하고는 목청을 돋우기도 합니다. 자기는 이미 그런 경지를 넘어섰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인 것이지요. 자기는 목사이니까 당연히 교인들보다 믿음이 좋다는 전제하에 외치기도 합니다. 그런 목사님들일수록 설교를 말씀의 선포라며 거드름을 피우지요.
남을 비난하기 전에 자기부터 돌아보고, 글을 쓰고 설교를 해도 먼저 자기를 돌아본 뒤 그리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문제의 많은 부분이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생각하는데, 아닐까요.
그런데 자기를 돌아본다 해도 그것이 주관적이어서는 안 되고, 객관적이라 해도 세상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크리스천인 이상 성경이라는 거울로 비춰 봐야합니다. 외관 아닌 내면을 정확하게 비춰주는 거울, 성경으로 비춰 봐야 신앙상에 있어서의 자기가 정확하게 보이는 것이지요.
그런데요, 전에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던 기도하다 죽고 싶다, 설교하다 죽고 싶다 한 말을 지금은 왜 좀처럼 들을 수 없게 된 것일까요. 바른 신앙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보니, 크리스천들의 신앙이 전보다 성장해서일까요. 아니면 세상이 하도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그에 휩쓸려 죽음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어서일까요. 여러분, 어때서일까요.
여러분, 내가 드리고 있는 기도의 끝을 이렇게 맺으면 어떨까요. “아버지께서 저로 하여금 항상 향기로 기쁘게 받으시는 산제사·예배로 드리는 일상의 삶을 살다가, 아버지께서 오라하시는 그날 그때, 아버지를 영화롭고 기쁘시게 해 드리는 죽음에 의해 아버지나라로 데려가 주심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동그리 21-08-26 15:27
 
'남을 비난하기 전에 자기부터 돌아보고, 글을 쓰고 설교를 해도 먼저 자기를 돌아본 뒤 그리 해야 하는 것' 말씀에 공감하며  저의 인생책에 나오는 글귀를 적어봅니다~ ' 자신이 옳고 상대방이 완전히 틀렸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체면을 깎거나 비난하면 안된다.  그 누구도 타인을 깍아내릴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권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사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그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잊지 않고 살기위해 늘 되새기고 있습니다~
영미 21-08-30 23:28
 
그 분은 늘 우리 마음속에 있다 배웠습니다.
기도하는 곳이 어디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겠지요
오히려 시끄럽고 사람많은 곳 보다
허름하고 조용한 골방에서의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실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 분을 향한 진정한 마음의 기도라면 장소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했는지가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늘 진심을 다하는 기도로 그 분 곁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윤지 21-09-08 15:21
 
위선적인 잘못된 믿음으로 섬기는 교회가 너무나 많습니다..
잘못된 믿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 진실된 마음으로 조용히 드리는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시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로케 21-09-09 21:15
 
대화와 이해를 통해 서로를 좀 더 알아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것이 가능해지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두필님 21-09-10 22:29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성장을 기도하며 앞으로도 더욱 성장할거라 굳게 믿어봅니다^^
소피아 21-09-17 16:16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나의 방도 골방삼아 기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산제사,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기 원하고 나의 내면을 정확히 알고자 애쓰도록 하겠습니다.
행복가득 21-10-12 17:44
 
나를 의식하고 또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살때가 허다합니다.  어디를 바라보며 달음질하느냐에 따라 목적지가 달라지듯이 세상이 내세운 표본이 아닌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만을 바라보며 그 뜻만을 따라 사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만을 푯대로 삼고 살아야겠습니다.
이강현 21-10-17 18:24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성능 좋은 거울이 있다면… 이구절 말씀이 정말 있다고 하면 나자신을 회계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뜻만 행하게 하시고 그마음으로 생활해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