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4-21 13:35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 갔던 제사장과 코로나21 바이러스-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글쓴이 : 안타레스
조회 : 736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 갔던 제사장과 코로나21 바이러스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깊은 골짜기의 굴곡 심한 길에서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 지나갔던 제사장은
제사장직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이었다.
당시로서는 그랬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특별히 구별된 사람으로 제사를 주관했다.
시체와 같은 부정한 것을 멀리 해야 하는
정결 의무가 지워져 있었다.

그런데 강도 만난 사람은
심하게 맞아 죽을 지경에 처해 있었다.
돕는다고 섣불리 나섰다가 죽기라도 하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었다.
시체를 만지는 꼴이 되니
제사장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고 지나간다는 것은
생명을 경시하는 죄를 범한 것이라고 힐난할 수도 있지만,
그건 오늘을 사는 우리의 견해이지 당시는 아니었다.
아니, 아니다.
당시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들이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통해 말씀하셨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 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호6:6)

그런데 말씀의 전반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 하는 것과,
후반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는 것은 거의 같은 의미이다.
‘제사’와 ‘번제’가 대칭을 이루고,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대칭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사가 필요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제사는 하나님의 무한히 크신 사랑의 표시로 제정된 것으로,
‘인애’ 즉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어떠한 ‘제사’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인애’가 결여된 ‘제사’는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일 뿐이다.

여기에서의 ‘인애’는 ‘사랑’의 다른 표현으로,
이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함인데,
성경의 중심사상이다.
그런데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향한 사랑만을 강조하여,
아니 율법을 지킨다며 그 근본 목적은 외면한 채
자기들의 전통과 유전의 종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엄중한 일인가.
그러기에 예수께서도 이 호6:6 말씀을 두 번이나 인용하여(마9:13, 12:7)
가르치셨던 것이다.
그러며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막2:27)라고
가히 혁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선언을 하신 것이다.
안식일도 율법도 사람을 위하여 만든 것이지
사람이 그것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사람들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구속하는 데에도 쓰고 있다.

모두의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 지나갔던 제사장’ 이야기는
예수께서 드신 ‘착한 사마리아인’ 예화에 나오는 것인데,
어떤 율법교사가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였”다고 하는
율법의 한 구절(신6:5)을 ‘영생’의 방법으로 든 말을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런 사람이 ‘이웃’이라 가르치신 것이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종교적으로도 인종적으로도 혼혈로 인해
유대인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사마리아인은 ‘이웃’이 아니었고 ‘이웃’이 될 수도 없었다.
그런 사마리아인이 제사장과는 달리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함으로
유대인에게 있어 ‘이웃’의 본이 된 것이다.
제사장은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구했어야 했다.

그는 제사장으로서의 직무에 충실했지만,
그것은 진정한 충실이 아니었다.
정결 의무에 매몰되어 그보다 더 소중한 인명(人命)을 소홀히 함으로써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오히려 훼손한 것이다.

제사가 됐건 예배가 됐건
모두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구약시대의 제사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고,
그 종류에 따라 그것이 가진 의미는 각각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림으로
그분과의 온전한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했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예배는 한 마디로
하나님께 절하는 행위, 경배하는 행위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절을 한다는 것,
경배를 드린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순종을 다짐하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온 지구촌이 코로나19와의 전쟁 중인 현 사태에서
우리의 예배는 어떠해야 할까.
다행히 우리나라는 어제(18일)로 하루의 확진자가 8명까지 줄어들었다.
모두가 기뻐하며 자축할 일이다.

우리가 다 같이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등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하고,
의료진의 희생적 헌신과 당국의 지칠 줄 모르는 업무수행 때문이다.
덕택으로 당국은 오늘(19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부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파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가공할만한 전염력을 가지고 있다.
단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증상 감염자가 자신이 감염된 줄도 모르고
활발하게 대인 접촉을 하고 다닌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가 지금까지 애쓰고 견뎌온 보람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예배 참석자라 해서 무증상 감염이 피해 갈 리도 없는 일 아닌가.
그렇다고 무작정 교회의 문을 닫은 채
모여 드리는 예배를 미루기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보니
우리의 아픔은 커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신자에게 있어 정상적인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은
아픔이자 고통이다.
신심이 깊을수록 더욱 그러하다.

우리에게 처한 상황이 이러한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시기를 바라시는 것일까.
바이러스 확산의 위험을 안고서라도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바라시는 것일까,

아니면 감염 차단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영상 같은 방법을 통해 예배드리는 것을 낫게 여기시는 것일까.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어떤 예배일까.
우리는 여기에서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
서둘러 자리를 떴던 제사장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어떨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윤지 20-04-22 16:06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배웠다면 지금은 실천해야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럴때일수록 주변을 둘러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도와야합니다.
또한 이웃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하여 큰 화를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훈훈 20-04-23 21:10
 
예배를 드리기위해 모임을 갖는 것 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 하나님께서 더 원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다영 20-04-23 21:49
 
화려한 형식으로 예배를 드리는것보단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며, 도와주는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율리아나 20-04-24 16:26
 
하나님의 진정으로 원하는 기뻐하시는 예배는 종교의 자유와 신앙을 앞세워 교회라는 물리적공간에서 예배방식을 고수하지말고 자발적으로 집합예배를 중지하고 서로를 위한 진정한예배를 드리는것이 하나님이 원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필님 20-04-25 23:15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무엇일지 다시한번 생각하게되는 계기가 된것같습니다.
공주아빠 20-04-26 09:18
 
모두가 함께 안심하고 서로를 위해 진정성 있는 교제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코로나19를 잘 이겨내서 예배가 회복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봄날 20-04-27 21:55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있는 그 어떤 곳이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과 원하시지 않는 것을 구별하여 참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영미 20-05-12 23:27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이든 계실터이니 환경이 조금 안정될때까지는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분노하시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올바르게 행동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규연애비 20-05-21 16:48
 
코로나 이전삶으로 돌아가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예배를 들일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깊이 새길뿐만아니라 실천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디 되도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