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1-13 16:45
토착왜구, 그런 게 정말 있기는 한 것인가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글쓴이 : 안타레스
조회 : 926  
토착왜구, 그런 게 정말 있기는 한 것인가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진짜 내로남불이 덜 내로남불을 보고 내로남불이라 비난한다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을 가리켜 토착왜구라니…

토착왜구, 좀 거친 말이다.
아니 심히 난폭한 말이다.
‘토착’이란 대대로 그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고,
옛날에 우리나라와 중국 연안에서 약탈을 일삼고 다니던
일본 해적을 가리켜 ‘왜구’라 하는 것이니,
이 말 ‘토착왜구’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국민 중
누군가를 지칭하는 말임이 틀림없는데,
어떻게 그런 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말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것일까.
‘토착왜구’란 ‘토왜’라는 말을 풀어 쓴 것이라는 게
정설처럼 인식되고 있는데,
이 ‘토왜’라는 말이 처음 언론에 등장하는 것은
1908년 4월 5일자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 실린
‘壹團厲氣凝聚하야 一進會가 生出이라 大和魂魄換着하니
土倭之稱難免이라 自衛團의 兼毒으로 傳染病이 熾盛하니뎌
心腸을 淸潔하지’라는 말에 나온 것이라 한다.

그리고 애국지사 정암 이태현(1910~1942) 선생의 문집
<정암사고(精菴私稿)>에 ‘수왜십죄(數倭十罪: 왜인들의 열 가지 죄)’라는 항목이 있는데,
거기에 ‘토왜가 원수와 같은 오랑캐를 끌어들여
종묘사직을 망하게 했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의 오랑캐는 물론 왜인을 지칭한다.

그런데 ‘토왜’를 풀어 쓴 말 ‘토착왜구’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가 지난봄 3월 14일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들이 분열됐다’고 말해 역사왜곡논란이 일어났다.
민평당 문정선 대변인은 그 다음날인 15일
‘나 대표가 토착왜구라고 커밍아웃했다’ 했으며,
이에 곧바로 자한당 이양수 대변인은
‘친일매도 비판과 단어선택이 도를 넘었다’며
‘모욕죄와 명예훼손죄 등 동원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가 반드시 이어질 것’
이라고 반발했다.
민평당도 이를 가만히 듣고만 있지 않았다.
정동영 대표가
“토착왜구가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을 휘젓고 있다”며 공격의 고삐를 죄었다.
 
‘반민특위’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의 약칭으로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했던
특별위원회를 말한다.
그러나 친일 세력과 이승만 대통령의 방해로 반민특위의 활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친일 세력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이들이 한국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였다.
그 결과 사회는 정의가 무너져 가치관이 혼란에 빠졌고
이기주의와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되었다.

부연설명하자면 반민특위는
광복 이후에 제헌헌법을 근거로 만들어진 합법적인 조직으로
친일잔재를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이 강제로 해산하면서
결국 친일잔재청산은 물을 건너가고 말았다는 것이
국민 다대수의 인식이다.
그런데 그런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들이 분열됐다고 하니
비판이 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토착왜구라니
너무 심하다는 생각 또한 지우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같은 민족 대한민국 국민을 보고
토착왜구라 하는 것보다 더한 막말이 어디 있겠는가.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

그러나 세상만사는 그렇게 간단명료하게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대한매일신보>는 정암 이태현 선생의 <정암사고>보다 먼저 
1910년 6월 22자에 ‘토왜천지(土倭天地)’라는 글을 실어
토왜를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인종’이라 정의하였다.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
역시 거칠기 그지없는 표현이다.

이를 좀 순화하여 말한다면
‘혈통적으로는 한국인이 분명하나 의식은 일본인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데,
이 땅에 그런 사람은 정말 없는 것일까.
없다고 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한다.
아니 없기는커녕 득실득실하다는 것이 정확한 말일 것이다.
그렇게 친일이 도를 넘어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사람이 많다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그들은 보통사람이라면 몸서리치게 지긋지긋하여
생각하기조차 끔찍했던 그 일제 36년을 가리켜
이 땅을 근대화시킨 거라며 긍정적 평가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 국민의 강제징용에 위안부, 식량수탈 같은 피해도 부정한다.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전전(戰前)의 메이지 헌법시대,
그러니까 제국시대로 돌아가는 걸 목표로 하는
일본회의(日本會議)를 정치적 기반으로 한
아베 정권의 주장을 기를 쓰고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말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지금 나라에는 옳고 그름이 사라지고
진영논리가 판을 치고 있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토착왜구들이 애국시민 행세를 하는데도
그게 자기 진영의 사람이라면 박수를 보낸다.
아니 함께 토착왜구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토착왜구라는 말만 나와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말한다.
토착왜구란 좌익들이 보수진영에 친일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말이다.
5.18과 세월호에 대해 잘못 말했다가는 토착왜구가 된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수출 금지령이 내렸을 때
가장 좋아 한 것은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고
경제 불황은 일본 때문이다라 하려 한 현 정권이다.
등등의 말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정말 그렇다면 이 땅에는 토착왜구가 없다는 말인데,
정말 그런가.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인’ 같은 사람들이
정말 이 땅에 한 사람도 없는가.
없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말이다.

한 유명 대학의 모 교수는 위안부에 대해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이 아니다’며 ‘매춘의 일종’이라고 한다.
‘살기가 어려운데 조금 일하면 돈 받는다는 매춘 유혹이 있다.
예전에도 그런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더 알 수 없는 것은 그런 그를
한 거대 정당이 혁신위원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의 자리에 앉힌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박찬주 대장을 아십니까? '귀한 분'이랍니다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옳고 그름이 사라진 것은 물론
토착왜구와 같은 친일적 문제만은 아니다.
요즘 공관병 갑질로 사회를 분노로 들끓게 했던 장본인
박찬주 대장이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있다.

거대 야당이 영입 제1호로 지목하면서부터이다.
논란이 이는데도 당대표는 '귀한 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일전에는 군인권센터 소장을 겨냥해
‘삼청교육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등의
말을 쏟아내기도 한 인물인데도 말이다.

그런가 하면 국민 다대수의 염원이 담긴
검찰의 ‘세월호 특별수사단’이 출범하게 되자
이에조차도 반대하거나 몽니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검증이 다 된 것’ ‘검증이 끝난 얘기’라고도 하는데,
정말 그런가.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싶다.
야당을 압박하려는 것이 아니냐고도 하는데,
설사 그게 사실이라 해도 과오가 없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필자가 정작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데에 있다.
우리는 그때 세월호에서 희생된 유민이의 아빠 김영오 씨를 포함한
유가족들이 한 광화문에서의 단식투쟁을 기억하고 있다.
거기에는 자식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피멍이 든 가슴에다
오랜 단식으로 배 가죽이 등에 붙은 그들 옆에서
냄새 진한 피자와 치킨 같은 음식을 폭식하며
빈정거리고 약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야비하고 잔인해 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기는 그야 별의 별 사람도 다 있는 것이 세상이다 보니
그렇다 할수도 있지만,
가슴에 금배지를 달만큼 지체 높은 인사가
그 유족들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면 믿어지겠는가.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
‘자식 팔아 내 생계 챙긴 것’이다.

요지경 같은 이야기는 또 있다.
알츠하이머로 5.18 관련 재판에도 나갈 수 없다고 버티던 전두환 씨가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골프를 치는 모습이 공개되어
세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상대방의 비난성 말을 곧잘 받아넘겨
맑은 정신임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그야 모두가 그런 자로 내놓은 사람이니 그렇다 치지만,
‘전두환은 영웅’이라고까지 추앙하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국회에조차
그 같은 사고에 찌든 사람들이 목청을 돋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5.18은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그냥 폭동이 민주화 운동으로 된 것’이라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북좌파들이 지금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내면서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한 사람도 있는데,
그들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면 누가 믿겠는가.
그 같은 발언이 나온 그때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 말 자체만을 들려주며 국회의원이 한 말이라 한다면
누군들 믿을 수 있겠는가. 


혹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미국인 같은 사람은 없는 것일까

정치란 본래가 지저분한 것이고 그런 것이 정치판인데
그런 걸 가지고 뭘 그리 호들갑이냐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필자도 그렇다는 데에 아니라 할 생각은 없다.
지난봄(4.29.)에는 여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제일야당을 지칭해
‘도둑놈들한테 이 국회를 맡길 수가 있겠냐’ 했다.
이게 국회의원이 그것도 집권여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런가 하면 바로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국회 운영위원회의에서 청와대 국정감사 진행 중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가 정의용 안보실장에게
‘우기지 말라’는 어휘를 써 가며 말하자,
뒤에서 듣고 있던 강기정 정무수석이
‘우기는 게 뭐예요. 우기다가 뭐냐고’라고 소리치며
거칠게 항의했다.

정무수석이 할 일이 무엇인가.
국회 및 여야 정당과의 소통, 협력이 주요 업무 아닌가.
그런데도 그는 청와대를 5공 독재의 권력시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렇게 전개 되다 보면 양비론이 되어
‘그놈이 그놈’이라는 말이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사회고 나라고 간에
진정한 의미의 발전은 물 건너가고 말게 된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하물며 인간세상, 그것도 정치판인데
옳기만 하고 바르기만 한 집단이나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더 나의면 그쪽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잘못이 크면 그래선 안 된다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고 나라고 더디더라도 발전해 간다.
그놈이 그놈이라 해서는 발전은 없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권이라 목청을 돋우는 사람들이 많다.
설령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가 있고 7시간도 더 지난 시간에서야
중대본을 찾아
‘다 그렇게 구명 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잠꼬대가 아니고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을 한 대통령,
허구한 날 머리손질에 2시간씩이나 정성을 들인 대통령은 어떤가.
그가 문 대통령보다 더 유능하고 책임감이 강한가.
그리고 그가 대통령 때의 집권당은 어느 당이었는가.

문 대통령이 한미관계를 파탄 냈다고도 한다.
대미관계가 조금만 껄끄러워져도 나라가 곧 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법석을 떠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미국과 사이좋게 지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

우리는 지금도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에 간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의 공식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대통령과 함께 탄 카트를 운전했다.
그 운전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함박웃음을 웃었다.
일부 언론은 이를 대미외교의 쾌거라 치켜세웠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그게 무엇을 주고 받은 대우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필자로서는 우리가 미국에 왜 이렇게도
사족을 못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집회에 태극기를 들고 나온 것은
애국심의 발로라 할 수 없는 것도 아닐 테니 그렇다지만,
대형 성조기까지 등장시킨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미국인’이고 싶은 것일까.
 
이제라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조금씩이라도 옳고 바른 길로 나갔으면 좋겠다.
의인이 없는 것처럼 바르기만 한 집단,
옳기만 한 사람도 없으니 조금이라도 나은 쪽에
힘을 실어 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차선이 없으면 삼선이라도 선택하는 것이
애국이고 나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요6:42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윤지 19-11-15 10:22
 
신앙칼럼을 집중해서 읽을때마다 저 자신을 되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지함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본인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옳은 쪽에 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생각을 갖고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홍석태 19-11-15 10:39
 
자본주의가 우리의일상과 사상에 침투했고, 그 것을 역이용하는 엘리트 정치인들을 보면 시민들이 얼마나 깨어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심각성을 실감하게 됩니다. 앞으로 내 앞에 놓여있는 밥그릇보다 더 멀리 깊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소피아 19-11-19 09:15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조금씩이라도 옳고 바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차선이 없으면 삼선이라도 선택하는 것이
애국이고 나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공주아빠 19-11-20 18:04
 
고정관념과 변하지 않는 신념 정의아래 좋은 일도 좋지 않은 일이 될 수 있고,  그 반대도 될 수 있는 대한민국에 타협과 이해 그리고 배려가 넘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훈훈 19-11-24 07:12
 
목사님 말씀처럼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하며 무엇이 이 나라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며, 지금씩이라도 옳고 바른길을 택해 나아가길 바랍니다.
영미 19-12-01 23:54
 
저라도 바른 생각을 하고 무엇이 잘하고 잘못한 것인지를 잘 헤아려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제가 잘 할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잘못한 것에는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며, 조그만 일이라도 애국의 발걸음에 보태도록 할 것입니다.
두필님 19-12-14 11:16
 
대한민국이 나은길로 나아가 한층 발전되길 바라며 항상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또한 발전에 도움이 될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유진짱 19-12-21 20:11
 
저 자신에게도 옳고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항상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TV에 나오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좋은 모습만!! 옳고 바른 모습만 후손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좋은 길로만 인도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