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4-08 14:47
목사라 욕하지 말라, 목사라고 다 같은 목사가 아니다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글쓴이 : 안타레스
조회 : 1,369  
목사라 욕하지 말라, 목사라고 다 같은 목사가 아니다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설교가 목사의 전유물이건 아니건
그 설교라고 하는 것을 주로 목사들이 한다는 데에
아니라 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목사의 주된 업무 중의 하나가 설교라는 것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만큼 이름이 조금이라도 있는 목사치고
설교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고,
설교 잘못하는데도 좋은 목사로 대접받는 경우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초신자 시절의 필자는
목사 아닌 전도사가 담임 교역자로 시무하는 교회에 다녔다.
그것도 그 전도사의 설교는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준다 해도 잘한다 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교인들은
그분 전도사님을 몹시도 존경하며 사랑했다.
교인들뿐 아니라 지역사회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당시는 목사 수가 적어 농촌의 많은 교회들은 전도사를 모시고
신앙생활을 했으니 그렇다지만,
교인들이 설교를 잘못하는 교역자를 존경해 마지않는다는 것은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그러는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았다.
그분 전도사님은 설교를 입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삶으로 하시는 분이었다.
그러니 설교보다 삶을 더 소중히 여기셨던 것이다.

교회의 초창기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천부지를 싸게 사서 교회를 지었는데,
40평이나 되는 목조건물이었다.
고작 40평을 가지고
‘40평이나’라 하느냐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아니다.
당시 행정구역상의 우리 면에는
그보다 큰 건물이 면사무소와 그 소유의 창고가 하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교회를 집을 지은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전도사님이 직접 지으셨다 한다.
나무로 모형 교회를 만들어 연구하며 지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입소문을 듣고 우리 교회도,
우리 교회도 하고 부탁을 해와 전도사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셨다.

그러다보니 설교준비를 할 새가 있을 리 없었다.
외지에 나가 교회 짓는 일을 하다
주일이나 수요일이면 예배시간에 맞춰 오는 일이 많았다.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어 작업복차림으로 설교를 하는 일도 많았다.

전도사님은 삶 자체, 생활 자체가 설교였다.
근면 성실할 뿐 아니라 정직했고,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타의 모범이 되었다.
성경대로 살려 애를 썼다.
그러는 그분을 교인들은 존경하고 사랑하여 따랐다.
거듭 말하거니와 교인들 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다 그랬다.
교회를 떠나신 지 50년이 다 된 지금도,
소천하신지 오래인 지금도 당시의 교인들은
그분을 못 잊어하고 있다.
그분은 우리 모교회의 전설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 담임목사님의 설교는 정말 좋다.
목사님은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됨 없이 제대로 가르치려 애를 쓰신다.
성경에 정통하다면 너무 식상한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하여튼 성경에 관한 이해의 깊이와 넓이가 대단하시다.
그뿐 아니라 생활도 모범적이시다.
부교역자들을 대하는 데에도 인격적이시다.

목사님의 설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필자는 그 설교를 10년을 꽉 채워 들었는데,
글의 소재를 거기에서 얻기도 한다.
그러며 필자는 신앙의 근육을 조금이나마
튼튼하게 하지 않았나 한다.
감사, 또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몇 주 전에 들었던 설교의 한 부분이
잊히지 않고 필자의 가슴에 남아
졸고 있는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역할을 해 주는 일이 가끔 있다.
문틈으로 새어드는 한 줄기 빛이라 해도 좋다.
예화를 중심으로 한 부분이다.
혼자만의 가슴에 묻어 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나누고자 하여 여기에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설교의 그 부분 내용은 대충 이렇다.
하나님께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하셨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인애’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외형적이고 종교적인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형식적 예배, 의무적 봉사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적용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려 하는데,
유☓☓라고 하는 목사님이 쓴 짧은 글의 내용입니다.

어렸을 때 집안이 너무 어려워 창녀촌으로 팔려간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지옥 같은 삶이었지만
자매는 거기에서 어느 청년과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의 그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어둠을 스스로의 힘으로 거둬내기로 결심하고
창녀촌을 탈출하였습니다.
신변상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결단이었습니다.
부부가 된 그들은 아무도 자기들을 알아보지 못할 도시를 찾아가서
거기에 새살림의 둥지를 틀었습니다.
창녀촌에서 지낼 때 자매에게는 부러운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자매는 그것을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부는 교회에 가서 등록을 하고 교인이 되었습니다.
누구의 전도를 받은 것도 아닌데
아내의 바람과 남편의 사랑이 그리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부부는 정말이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세례를 받고 둘 다 집사도 되었습니다.
어두웠던 과거는 점점 잊혀 갔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이 같은 삶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었습니다.
같은 교회의 여 집사 하나가 자매의 과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토록 신실해 보이던 자매에게
그 같은 과거가 있었다는 데에 무척 놀랐습니다.
그리고 ‘소름이 끼친다’ 했습니다.
‘어쩜 그런 과거를 그토록 감쪽같이 속일 수 있어?
정말 가증스러워!’라며 입을 삐쭉거렸습니다.
그녀의 입은 가만히 있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고 집사님만 알라며 속삭였습니다.

그렇게 퍼져나간 귓속말은
그들 부부만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바보도 아닌데
그들이라고 언제까지 눈치 채지 못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교인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그토록 친절하고 따뜻했던 사람들인데
자기들만 나타나면 힐끔거리며
마치 벌레라도 보듯이 자리를 피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모든 교우가
자신들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부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교인들에게 다가가려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교인들은 그들을 피했습니다.
교회는 창녀촌보다 더 싸늘했습니다.
아무리 버티며 이겨내려 애를 써도
밀려오는 절망과 좌절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어느 날 밤 부부는 다량의 수면제를 나눠 먹고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담임목사는 젊은 부부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가슴을 치며 울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양 떼를 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리 떼를 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가요,
우리 교회에는 양떼만 있을까요?
여러분은 양떼인가요?
교회에는 양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리도 간혹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성품은 다양한데요,
우리 교회는 그중 어떤 성품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은혜, 진리, 기쁨, 사랑, 온유, 자족, 품어줌,
따뜻함, 위로, 감사, 절제, 겸손, 충성, 신실, 용납, 베품, 섬김 등 실로 많은데,
우리 교회는
그 가운에 어떤 것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너는 나의 대리자다.
세상 사람들이 너를 보면 내가 보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예수의 향기를 내며
그분을 보여 주는 거울이 되고 있는가요?
우리가 하는 봉사에는 일은 있는데,
향기가 없는 것은 아닌가요?
혹 우리의 말 중에서 악취가 나고,
우리 교회에 저 창녀촌보다 더 싸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설교의 일부만을 잘라내어 소개하다 보니,
그것도 원고가 아닌 육성의 녹음을 다시 들으며
대충 정리한 것을 옮기다 보니 어색한 점도 있고
부족한 면 또한 없지 않음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전술한 대로 이 부분이
필자의 졸리는 영혼에 자극을 주어
일깨웠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특히
“하나님, 제가 양 떼를 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리 떼를 치고 있었습니다”라는
유 아무개 목사님의 말씀은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제 목사들은 동네북처럼
이 사람이 두드리고 저 사람이 쳐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목사라고 다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 세 분의 교역자가 등장하는데,
어떤가,
이런 이들이라면 조금은 존경을 받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데,
아닌가.

                    충남대 명예교수 및 우리집공동체 원로목사 임종석

라새름 19-04-08 20:47
 
하나님이 계시고 그 아래 목사님이 계시기에 저희도 존재할 수 있음이라 생각합니다.
조금이 아닌 많은 존경을 받으셔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소피아 19-04-09 09:38
 
삶으로 몸으로 설교하시는 존경받아야 할 목사님도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성경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행복가득 19-04-09 13:03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을 몸으로 행동으로 드러나게 하는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내 허물은 덮으려고 애쓰면서도 남에게는 관대하지 못한 내 자신이 보입니다.
삶을 통한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겠습니다.
윤지 19-04-09 15:35
 
목사님이 계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깨닫게하여
저희가 옳바르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범이 되시고 저희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목사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홍석태 19-04-10 16:24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일까, 교회라는 마실에 나가서 복을 빌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과연 목사님을 하나님의 메신저로 생각하는 것인가, 좋은 말만 해주는 개인상담가로 생각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는 글 입니다.
훈훈 19-04-10 18:34
 
말이아닌 실천으로 삶을 살아가는 목사님들까지 욕을 먹는다면 너무도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사시는 목사님들이 좀 더 많은 존경을 받기를 바래봅니다.
공주아빠 19-04-19 22:03
 
하나님을 처음 알아가며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순간을 기억하며 세상에 대한 타협과 이해가 아닌 하나님에 대한 순종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주님의 종들을 응원하여 함께 기도해야 겠습니다.
오혜경 19-04-19 22:14
 
교회가 그저 무작정 "잘되게 해달라"라는 식으로 기도하는 공간으로만 보여지지 않도록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여 전할 수 있는 목사님들이 많아지고 그러한 분들을 존경하고 따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유진짱 19-04-21 00:34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교회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은 없지만, 성경공부 시간과 신앙칼럼을 읽으면서 많이 알아가고 배워가고 있습니다.
두필님 19-08-31 22:07
 
아직 배워나가는 단계에서 목사님의 가르침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