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4-03 11:11
기독교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오해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글쓴이 : 안타레스
조회 : 1,363  
기독교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오해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믿음으로 사는 자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정말 만사형통하는 걸까

크리스천들은 잘 믿으면, 믿음의 생활을 잘하면,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면
구하는 것을 다 이루어 받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수님께서도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하셨다며
그리 믿으려고 애를 쓴다.

잘 믿어지지 않으면 자기최면이라도 걸어 억지로라도 그리 믿으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를 받으며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는
찬송도 나오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와 다르다.
아무리 잘 믿고,
믿음의 생활을 잘하고,
간절히 기도며 산다 할지라도
구한 것을 그대로 다 이루어 받은 사람은 없고,
만사형통하는 사람 또한 없다.

사실이 그렇다 보니,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많다 보니
사람들은 뭔가 그에 상응하는 이유를 찾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 자책을 하기도 하고,
간절함이 모자란 때문이라며 자기반성모드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기도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하는 믿음을 놓지 못하고
어떻게든 그 믿음을 키워 보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다.
어떤가. 그렇지 아니한가.

이에 그렇다면 구하라 주실 것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이라는 말이냐,
기도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성경말씀이 헛소리라는 말이냐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마한들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필자도 크리스천이고 명색이 목사인데 말이다.

다만 기독교는,
기도는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나오고,
‘은 나와라 뚝딱!’ 하면 은이 나오는
도깨비방망이와도 같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많은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인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 주신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것이 기독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게 그거 아니냐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그 또한 아니다.

피조물인 인간들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어서
진짜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정작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불필요한 것까지도 원하여 구하는 일이 많다.
때에 따라서는 어린아이가 칼을 갖고 싶어 하여
부모를 조르는 것과도 같은 기도를 하는 일도 없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그와 같은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그저 당장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것저것 가리기도 전에 주시라 구하기부터 한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믿음이 적었다,
간절함이 모자랐다, 자책을 한다.

물론 누군들 병이 났는데,
사업이 위기에 처했는데 이것저것 따지고 나서 기도를 하겠는가.
그냥 반사적으로 병을 고쳐 주시라,
사업이 위기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시라
기도로 매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린아이 손에 들려진 칼이라면 흉기 아닌가

그러나 나의 바람이 하나님의 나에 대한 뜻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사람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기도에도 우선순서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친히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하셨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기독교는 만사형통을 바라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가 만약 그런 종교라면 만사형통이 곧 축복이 되어야 하고,
그로부터 멀어지면 축복받지 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난하고 병약하면,
그리고 사회적으로 출세를 못하고 자식들이 평범한 소시민이면
저주받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수도, 그 제자들도 모두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서 가능한데도 만사형통을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신‧불신을 불문하고,
믿음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누구나가 다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것은 나쁜 일도 아니요,
믿음이 적어서도 아니다.

이 세상에 만사형통 같은 것은 존재할 수도 없고,
그런 게 있다 해도 기독교 신앙이 바라는 바,
가르치는 바도 아니라는 것일 뿐이다. 

기독교는 축복을 원하는 종교가 아니다.
아니,
기독교도 축복을 구하는 종교가 맞다.
다만 무엇을 복으로 여기느냐 하는 관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팔복을 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서 사족으로 한 마디—.
‘축복’은 ‘빌 축(祝)’자에 ‘복 복(福)’자를 써서 ‘복을 비는 것’인데,
‘행복을 축하고 비는 것’과
‘기독교에서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행복’
이라고 하는 일본어에서의 의미를 빌어다가
그대로 쓰면 되느냐 할 사람도 있을 줄로 안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들에서도 이미
그런 의미로 굳어져 쓰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로 좋으리라 생각한다.
언어는 살아서 성장하고 변화되어 가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는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본줄기가 아니니
그 평가는 독자 여러분께 맡기고자 한다.

각설하고 구하는 것을 다 받지 못하며
만사형통하지 못한 것은 우리에게 있어 축복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기도하는 것마다 다 그대로 이루어지고,
만사형통하여 차고 넘치는 생활을 한다면 나는,
나의 신앙은 어떻게 되겠는가.

건강하여 힘이 넘쳐 나고,
오나가나 산해진미가 가득하며,
무엇이나 바라는 대로 된다면,
그래서 부족한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면
나는 어떻게 되겠는가.
어린아이의 손에 들려진 칼처럼 위험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무풍지대인 온실 속의 초목은
뿌리가 깊을 수 없고 단단하게 자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연단과 훈련을 위한 어려움은 주실지라도 슬픈 일,
불행한 일은 만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야숙의 밤에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다리

우리는 육체의 소욕이 속사람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육체의 바라는 바는 만사형통을 지향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속사람부터 튼실하게 가꾸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고.
말씀대로 하는 것이 속사람을 튼실하게 하는 것이요,
신앙을 바르게 길러 가는 것이다.

필자는 앞에서 기독교는 축복을 구하되 그릇된 축복이 아니라
참된 축복을 구하는 종교라는 의미의 말을 했는데,
자신의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 곧 진짜 축복이다.
구하는 것마다 다 이루어 받고 만사형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것이 기독교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안에 예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을 기도하며 노력하여도 이루기 힘든 일이다.
그저 조금씩 품어 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것도 나의 힘만으로는 어렵고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가며 품어 가는 수밖에 없다.
나와 성령님의 공조 가운데 이루어 가는 일대 사업이다. 

신비체험을 하고는 성령충만의 결과라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진짜 성령충만, 진짜 성령의 역사는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안에 예수의 마음을 품도록 하는 일로 나타난다.
아무리 신비로운 기적이 일어났다 해도
그게 자신의 안에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과 다르다면,
또는 그러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단에 의한 결과임이 분명하다.

필자는 방금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
우리의 속사람을 튼실하게 하고
신앙을 바르게 길러 가는 것이라 했는데,
왜 그런 것일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눅14:6)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를 모른다면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말인즉슨 ‘예수=길=진리=생명’이라는 것인데,
‘왜’라는 질문에 이보다 더 명확한 대답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가는 길에
야숙을 하다가 땅으로부터 하늘에 닿은 사다리의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그 맨 위에 하나님이 계시는 꿈이었다.
그런데 이 사다리는 하늘의 거룩하신 하나님과 땅의 죄인들을 이어주는 가교로서,
땅의 죄인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이르게 하는
단 하나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요1:51)
예수님의 말씀인데,
야곱의 사다리와 제대로 이어져 짝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 단 한 분뿐이시고,
그러기에 그분은 ‘진리’이며 ‘생명’이신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시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마27:51)었던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성서의 휘장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휘장은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드리워져 있는 것으로
1년에 한 차례 대제사장이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날 열렸다.
그러니까 1년에 단 한 번만 열렸던 것인데,
그 같은 제사는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십자가에서 찢겨 운명하시자,
그 육체를 상징하는 휘장이 찢김으로
구약의 불완전한 제사는 끝이 나고 모든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독교는 그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성도들 각자의 안에 품어 가는 종교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품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것이 기독교이다.
구하는 것을 다 이루어 받거나 만사형통을 바라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무당들의 무속신앙이다.

입으로는
‘나의 품은 뜻 주의 뜻 같이 되게 하여 주소서’라 찬송하면서
속마음으로는 ‘주의 품은 뜻 나의 뜻 같이 되게 하여 주소서’ 하고
바라는 것은 아닌지 돌아다볼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기도의 초점이
‘주’가 아닌 ‘나’에게 맞춰져 있지 않은지도 돌아다볼 일이 아닌가.

끝으로 한 마디.
내가 원하는 것은 많은 소유나 만사형통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길러가는 것이어야 한다.
자신의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 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충남대 명예교수 및 우리집공동체 원로목사 임종석

홍석태 19-04-03 12:34
 
구하면 모든 것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아버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 욕심을 채워줄 존재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공주아빠 19-04-03 21:41
 
힘든 시련과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 때 더 찾는.. 그런 신앙인으로서의 삶이 아닌
일상의 감사와 만족가운데서도 주님이 함께 하고 있음을 고백하며,
나를 구하는 자로서만의 기도와 삶이 아닌 예수님처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기도와 삶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라새름 19-04-06 07:08
 
아직도 많이 부족한 성도입니다. 모든 것을 다 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진심을 담아 기도하며 주님을 믿는 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두필님 19-04-07 00:52
 
겉과 속이 같을수 있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항상 저의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양현 19-04-08 22:00
 
자신의 안에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것이 기독교라는 말이 기억이 남습니다. 저 자신이 그런 사람인지 되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이글에 감사합니다.
소피아 19-04-09 09:24
 
내 자신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길러가야 하지만 내 필요에 의해 하나님을 찾을때가 많았던 것에 대해 반성하게 됩니다.
행복가득 19-04-09 13:17
 
내게 좋은것이 아니라 하니님이 보시기에  좋은것을 주시기에 그저 감사하지요
사람들이 복이라고 여기는 것이 복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이
복이라 감사하지요
훈훈 19-04-10 19:58
 
우리가 원하는 것을 기도하며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 지켜보시고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라 배웠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면 될 것 이라 생각합니다.
오혜경 19-04-19 22:22
 
내 생각이 가득한 나의 머릿 속에 있는 주님의 모습이 아닌 지금처럼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 순간에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정말 주님의 소망을 마음에 품으며 나아가기를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