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2-13 08:59
안달하지 않고 쉬는 것이 믿음
 글쓴이 : 임종석
조회 : 2,885  
==============  안달하지 않고 쉬는 것이 믿음  =====================


  “믿음은 안달하지 않고 쉬는 것이다.”

  며칠 전에 어느 목사님에게 들은 말이다. 무슨 말인가 싶어 의미를 물었더니 ‘나대지 않고 겸손히 주를 섬기는 것이 믿음’이라 했다. 목사님이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대개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한다. 가능하면 큰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게 그리 쉬운 건 아니다. 큰일이라면 그 어려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을 하다 보면 난관에 부딪혀 고생을 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하다 말 수도 없는 일, 어떻게든 뚫고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도 뜻대로 안 되면 안달하고 나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어떻게든’이 문제라는 말이다.

  ‘어떻게든’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라는 의미를 지닌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모로 가서는 안 된다. 모로 가는 길은 바른길(正道)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일을 하라 하시지 않으시고 무슨 일이 됐건 바르게 하라 말씀하신다. 그러니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바르게 하면 그건 무엇이라도 큰일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일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아무리 크고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바른 방법으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신 방법으로 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죄가 된다.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부족하여 우리에게 일을 하라 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을 한 순간에 해 치우실 수 있으신 분이시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일을 하라 하신 것은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사랑 안에 있어 당신의 뜻에 따르게 함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일이 뜻대로 안 된다고 해서 안달할 것도, 나댈 것도 없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우리의 임무는 끝이 난다. 물론 결과를 바라지 않고 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일의 계획단계에서부터 기도하며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세밀하게 따져 실행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며, 믿음으로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며 되지도 않을 일을 밀어붙여 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물론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붙잡아 주신다면 안 될 일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지 우리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제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여 안 될 일도 되게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좌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자리가 아닌가. 교만도 그런 교만이 없고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말은 어디까지나 정확하게 해야 한다.

  어쨌든 기도는 하나님을 졸라 못 견디게 하여 나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품으로 들어가 그분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지를 굳히는 행위이다. 그러한 마음을 바탕으로 하여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건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인지, 그리고 그분께서 지시하신 방법에 따라 하는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정말로 내가 하기를 바라시는가도 따져 봐야 한다. 그렇다고 일을 하다 힘이 드니 도망치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 분별력이라고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일은 무엇이 됐건 계획단계에서부터 세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은 물론이다.

  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이 같은 과정에 따라 일을 한다면 안달할 일도, 나댈 일도 없을 것이다. 겸손히 주를 섬기를 자세로 일한다면 앞에 놓인 장애도 괴로움 아닌 기쁨으로 대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일에 어찌 기쁨만이 있겠는가마는, 고통 가운데에도 그 마음 깊숙한 곳에는 은밀한 기쁨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하는 것이지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하다 보면 마귀가 방해하여 그와 싸워야 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그것도 일 자체를 직접 방해하기보다는 일을 하나님의 방법과 다르게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귀의 궤계에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나지 않은 교회건축허가를 뇌물로 나게 했다면 기뻐할 일이 아니라 가슴을 치며 통곡해야 한다는 말이다. 마귀의 꾐에 놀아난 것이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는 스승 예수를 팔아 죄를 지었으나 그 결과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런 유다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데에 일조했다고 상을 줄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심판이 있을 뿐이다. 뇌물로 교회건축허가를 받는 것과 예수를 판 유다의 행위는 죄를 짓는다는 면에서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몰라서는 안 된다.

  그것이 무엇이 됐건 일을 할 때면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을 한다 해도 힘껏 하지 않고 적당히 한다면 안 될 일이다. 아니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을 내어서 부지런히 일하’라고 말씀하신다(롬12:11).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한다 해도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으로 죄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구원과 자신이 해 놓은 일의 성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구원은 선행과도 상관이 없다. 구원은 오직 믿음 하나만으로 얻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에는 반드시 행위가 뒤 따르도록 되어 있다. 믿음이란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뜻을 이 땅에 펴길 원하시고, 바르고 착하게 살길 원하신다. 그러므로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 바르게 살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말로만 믿는 것이지 실제로는 믿는 것이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믿음 하나로 그 귀한 구원을 받았다. 정말이지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그 감사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일을 하게하고, 바르고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한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살 듯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존재들이다. 하나님의 품성, 그 사랑의 품성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고 빛을 내고 소금으로 녹아져 다른 사람들의 삶이 맛을 내게 하려고 기도하며 애쓰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일에는 크고 작은 것이 따로 없다.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큰 하나님의 일이다. 아무리 큰일이라도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하지 않으면, 즉 바른 방법으로 하지 않으면 작은 일만도 못하다. 아니 함만도 못하다.

  정말이지 안달하거나 나대지 말 일이다. 아니 겸손히 주를 섬기는 삶을 산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믿는 사람들은 전투복을 입고 나가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과도, 타종교 사람들과도 싸워서는 안 된다.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옷 입고 바르고 착하게 삶으로 오히려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믿는 우리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특권이 아니라 손해 볼 것을 각오하며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이다.

  죽으면 사는 것이 기독교이다. 손해를 감수함으로 더 크게 이익을 얻는 것이 기독교이다. 그 이익은 물론 물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도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진정한 부요는 물질 아닌 마음에서 오기 때문이다. 마음의 부요가 진정한 부요라는 말이다.

  봐라! 물질 많이 모은 사람들이 소금물을 들이켠 사람처럼 그것에 더 목말라 하는 것을. 그러나 크리스천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족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물질이 적어도 부자라는 말이다.

  최선을 다해 일하며 겸손히 주를 섬기는 삶을 산다면 안달할 일도, 나댈 일도 없을 것이다. 역경 가운데에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은밀하게 솟아나는 기쁨을 맛보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가진 것이 적어도 마음의 풍요를 누리며 부자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신희 15-10-05 18:00
 
안 녕하세요!! 교수님!!
r교수님 글을  읽으며 마음이 기쁩니다^^
언재나 가르치심은 한결같으시지요      ^^
작은일에  겸손함의  비밀!!!
한동안 침체되었던 신앙이란  ?
의 물음에  답을 얻고 갑니다..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