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1-28 10:31
목사는 사람이고 교인들은 동물인가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글쓴이 : 안타레스
조회 : 1,445  
목사는 사람이고 교인들은 동물인가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어리석은 자의 낯 뜨거운 고백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요21:15-17에 기록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필자는 예수께서 왜 베드로에게
이 같은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베드로는 사람이고 양은 동물 아닌가.

이리 말하면 고개를 갸웃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동물인 양을 먹이고 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양은 그냥 동물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신자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람과 대칭되는 말은 동물이 아니라 짐승이다.
그러니 ‘사람이 동물인 양을 먹이고 치는 것’이라는 표현보다
‘사람이 짐승인 양을 먹이고 치는 것’이라 해야
말의 맞는 조합이 될 것이다.
‘사람’을 ‘짐승’에 비유한 것인데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그것도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당시의 베드로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예수를 모른다고 거푸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는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고
다시 바다로 되돌아가서는 어부가 되어
물고기를 잡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사람이고 신자는 짐승이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필자로서는 아무리해도
예수님의 이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성경의 다른 것들은 다 이해가 되는데,
아니 이해가 된다기보다 믿어지는데,
세상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기적까지도 믿어지는데,
예수님의 이 말씀만은 그리 표현 하신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성경에서의 기적이라 하면 먼저 모세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미니 바닷물이 갈라져
이스라엘 자손이 마른 땅 같이 걸어 도망갔던 일,
그러기 이전의 지팡이로 뱀이 되게 한 일이며,
애굽에 내린 하나님의 10가지 재앙,
모두 모세를 통해 이뤄진 기적들이다. 

그 외에도 성경에는 숫한 기사와 이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우선 예수께서 친히 나인성의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셨고,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신 일 등등
성경에는 갖가지의 기적들로 넘쳐난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기적들을 별 의심 없이 믿는다.
믿는다기보다 믿어진다.
이유 같은 것을 따지지도 않고,
따질 필요도 느끼지 않는 채 그냥 믿고 믿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베드로에게 하신 내양을 먹이고 치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이해도 안 되고 납득도 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말씀이니,
성경말씀이니 믿지 못한 것은 아닌데,
그런 표현을 하신 그 뜻을 모르겠다.

사실을 말하면 필자도 성경말씀 중 믿어지지가 않아서
애를 먹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예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이다.
필자는 모태신앙이 아니라 20대 중반에서야
예수를 믿기 시작해서인지,
믿다가도 어쩌다 한 번씩 이것이 믿어지지 않아
애를 먹은 시절이 있었다.
그럴 때면 정말 괴로웠다.
마치 사단이 믿음의 마음속에 들어와 냅다 휘저어
의심을 뿌리고 나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아니 은혜로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그런 의심은 말끔히 사라졌다.
다른 기사와 이적은 다 믿어지는데
왜 동정녀 탄생만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분의 동정녀 탄생이 없었다면,
그분의 부활 또한 없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말씀 하나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에 비하면
성경의 다른 기사와 이적들은,
기적들은 모두 조족지혈에 지나지 않지 않는가.

그런데 베드로에게 하신 앞에 든 말씀의 표현에 대해
왜인지 모르겠다한 필자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
현재형으로 썼으나, 지금은 알고도 남음이 있으니
과거형으로 썼어야 맞다.
문재(文才)의 허약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사과드림과 동시에 낯 뜨겁고
부끄러운 자신에 대해 고백하고 싶은 것도 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께서는
아마 전술한 내용에 대부분이 공감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베드로는 사람이고 신자는 짐승이냐는 말에
어떻게 공감할 수가 있겠는가.
예수께서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필자가 낯 뜨겁고 부끄러운 것은 그래서이다.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을
자신만이 알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이다.
나름 배울 만큼 배우고 명색이 목사라는 자가
이보다도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고백하고 싶다는 것은,
필자는 이런 속빈 강정 같은 사람인데다가
얼마 전에야 예수께서 그리 말씀하신 데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도 한참이나 없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목사는 목자(shepherd) 아닌 목양견(shepherd dog)

필자는 초신자 때부터 목사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되었다.
목사는 성직자인데,
필자가 만난 목사들에게서는
아무리 해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목사라는 호칭은 기를 목(牧)자에 스승 사(師)를 써서
사람을 기르는 스승이라는 뜻이니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면에서 볼 때
성직자라는 말보다 못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해도 그들 목사를 고운 눈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부모를 포함한 어른이
어린아이를 기른다 하면 맞는 말이지만,
성인들 간의 누가 누구를 기른다는 말인가.
‘牧’자는 ‘친다’는 뜻도 있으니 더더욱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을 말하면 성경에 ‘목사’라는 말은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목자’라는 의미의 헬라어 ‘포이멘’을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그것을 공동번역은 ‘목자’라고 그대로 옮겼는데,
그게 옳은 번역이다.

‘포이멘’의 영역(英譯)은 'shepherd'이니
우리말의 ‘양치기’ 즉 ‘목자’이다.
그런 것을,
그러니까 ‘놈 자(者)’자를 ‘스승 사(師)’자로 둔갑시킨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을 ‘목자’라고 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자”(요10:11)라 하셨다.
‘양치기’라고 하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의 아들로,
그것도 자리가 없어 마구간으로 오신 분이시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 예수께서는
‘선한 목자’의 정의를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라 내리시고,
삯꾼 목사에 대해서도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해치느니라” 하셨다.

그런데 필자는 초신자 때부터 이미 많은 ‘목사’들에게서
이 같은 ‘삯꾼’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예수께서 신자를 양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은
‘양’과 ‘목자’의 관계를 부각시킴으로
당신과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강조하기 위함이셨다.

‘양’은 ‘목자’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목자’가 없으면 사나운 짐승들에게 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것이 ‘양’이다.
그 같은 ‘양’임을 잘 아시기에
그분께서 그 양들의 앞에 ‘목자’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아 온 많은 목사들은 양을 먹이고 치는 것이
그 양들을 보호하려 함이 아니라
털을 깎아 제 옷 해 입고 교회건물을 치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러기에 필자는 목사들이 받은 삯만큼이라도 일을 했으면 했다.
그러는 가운데 ‘목사’가 ‘목자’로 변화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질 나쁜 ‘목사님’으로 변해 갔다.
양털에 눈독을 들이는 건 이제 문제꺼리도 되지 않는다.
이리가 되어 양을 직접 해치기도 한다.
그들 가운데에 성법죄자들이 있다는 것이 그 확실한 증거이다.

교회를 사유재산처럼 세습하고,
교회를 목회 성공의 발판으로 삼으며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모두 나열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 양을 먹이’고 ‘내 양을 치라’ 하셨지
네 양을 그리하라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목자’여야 할 ‘목사’들은,
아니 ‘목사님’들은 자기 양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각자의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예수의 양이 아니라,
자기의 뜻에 맞는 자기의 양을 만들려 한다.

진정한 목자, 선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아니 ‘진정한’이라든가 ‘선한’이라는 수식어를 뺀
그냥 ‘목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목사’라고 부르는 ‘목자’는 ‘목자(shepherd)’가 아니라
양을 치는 목양견(shepherd dog)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교회의 담임목사실 출입문에 붙은
‘목양실’이라는 표찰이 마뜩찮다.
자신의 비뚤어진 마음 때문인지 모르지만,
목사님들이 그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일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목회에 대한 생각,
교회를 위한 일을 제일 많이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말씀에 부합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예수의 말씀대로 ‘청함을 받았을 때에’ ‘끝자리에 앉으’며,
교인들보다 낮은 데로 내려가기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교인이 교회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인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이에는 많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교회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장 소중한 가치일 뿐 아니라
성도들이 모여 교회가 되었다.

교인들이 즉 교회이고 교회가 곧 교인들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니 교회가 교인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인이 교회를 위해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필자의 생각이기도 하다.

교회와 교인에 대한 생각이
목사와 교인들이 달라야 한다는 말이다.

교인들은 물론 교회가 자기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기 바라기보다,
자기가 교회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부터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목사’가 ‘목자’라면
당연히 교회가 교인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목회에 임해야 한다.

교회를 목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양들이 푸른 풀을 뜯으며 영혼을 살찌우는 목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목사’는 ‘목자(shepherd)’ 아닌
‘목양견(shepherd dog)’이 되어야 한다.
그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니까.

                    충남대 명예교수 및 우리집공동체 원로목사 임종석

훈훈 19-01-28 11:16
 
목사님 말씀처럼 교회가 교인을 위해 있어야하고
교인이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 한다면
좀 더 교회가 올바른 길로 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라새름 19-01-29 11:39
 
교회에서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는 교인이 아닌 교회를 위하여 무슨일을 하여야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교인의 마음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루빨리 더 나은 교회의 모습이 보여지길 소망합니다.
공주아빠 19-01-29 13:47
 
높아 지려는 자는 낮아 지며, 낮아 지려는 자에게는 높임을 받을 것이라...
성경에 나오는 구절 가운데 항상 약한 자를 먼저 돌아 보시며, 그들의 삶을 몸소 느끼고, 고통또한 가장 크게 경험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생각하며 성경속에 답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봅니다.
두필님 19-01-29 14:48
 
좀더 교회의 기데에 부합할 수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같다는 생각이듭니다.
앞으로 교회에 바라기 보다는 도움을 줄수 있는 교인이 될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오혜경 19-01-29 16:27
 
하나님을 찾는 교인들이 자유롭게 교회 안에서 어떠한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이 더욱더 낮아지기를 기도합니다.
홍석태 19-01-29 17:26
 
비유로 쓰여있는 성경을 읽고 있자면 너무 어렵게만 다가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말씀공부에 정진하고 노력해야함은 명백해 보입니다. 필요에 의함이 아닌 마음의 양식을 위한 공부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규연애비 19-01-29 17:32
 
교회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알고 교회에서 내가 무언가를 얻기보다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믿음에 대해서만 보고 정진했으면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기때문입니다.
소피아 19-01-29 18:06
 
교회가 교인을 위해 있어야 함이 당연합니다.
또한 당연히 목사는 목자가 아닌 목양견이 되어 참다운 목장이 많아지길 바래봅니다.
복실이 19-01-29 18:15
 
교회의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네요
앞으로도 교희의 대한 의미를 새기고 올바른길로 가게될거라 믿습니다.
행양 19-01-29 18:37
 
비판하신 내용들 중 일부는 비단 한국교회에서뿐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열거하신 교회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현재 한국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어지러운 상황들은 교회 외부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도 많은 우려심을 갖게 됩니다. 날카로운 비판 잘 보았습니다.
윤지 19-01-29 18:37
 
교인들은 교회가 자기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기 바라기보다 자기가 교회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부터 생각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생각이 각자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것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올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가득 19-02-04 14:00
 
진정한 목자, 선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선한 삶을 살고자 한다.
박효인 19-02-24 17:27
 
교회는 교인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말에 백번 공감합니다.
교회에 바라기보다 도움을 주는 교인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