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9-06 14:09
교인들이 부목사보다 담임목사가 대하기 편한 교회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글쓴이 : 안타레스
조회 : 2,423  
교인들이 부목사보다 담임목사가 대하기 편한 교회
(본말전도는 나와 교회를 망치고 모두를 망쳐 나라까지 망친다)

-담임목사는 역시 교회의 최고 계급인가

필자는 일전에 어느 목사님을 만나 모처럼 느슨한 마음으로 가벼운 담소를 나누었다.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그런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날은 신앙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가리는 일도 없이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지금 한창 목회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니 바쁘실 테지만 모처럼의 망중한을 즐기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 시간은 어쩐 일인지 전화도 별로 오는 일이 없어 이야기판은 활기를 띠어 갔다.
주로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고 필자는 들었다. 말씀 가운데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목사님, 제가 부목사 때인데요, 어느 여집사님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털어 놓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담임목사님보다 부목사인 제가 말하기 편했던 거였겠지요.”
목사님은 그 고민이라는 것의 구체적인 이야기도 하셨으나,
필자가 여기에서 하고자 하는 말과는 무관하므로 생략할까 한다.
그런데 필자는 그때 얼핏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인들이 부교역자들보다 담임목사가 더 대하기 편한 교회는 없는 것일까.’
독자 여러분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는가. 그런 교회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직접 본 적은 있으신가. 필자는 아직 없다.
이처럼 쓸데없는 일을 가지고 왜 이리 시간을 낭비하는 거냐고 이맛살을 찌푸릴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럴 일이 아니다. 이건 기독교가 가야 할 길의 매우 중요한 문제와 맥이
닿아 있다. 예수께서는 왕 중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다.
 그것도 태어날 자리가 없어 비참하도록 낮은 마구간으로 오셨다.
그리고 사역을 시작하신 뒤에는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겨 낮아짐의 본을 보이셨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당연히 그분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낮아져야 하는데,
그리 하고 있는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이 필자부터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목사는 누가 뭐래도 신앙상의 지도자이니 일반 성도들보다 낮은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필자로선 누구를 탓할 계제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그 같은 현실이 안타깝고 속이 상한 것은 사실이다.
이제까지 ‘교인들이 부교역자들보다 담임목사 대하기가 더 편한 교회’ 같은 문제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자신의 둔감함이  한심스럽다.
물론 담임목사나 부목사, 전도사, 그리고 장로와 집사 같은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업무상의 포지션이라는 것은 늘 생각해 왔다. 목사는 일반 교인들보다 낮은 데까지
내려가 그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도 생각해 왔다.
그리고 필자 자신도 그리되려 노력하지 않은 것 또한 아니다. 그러나 그리 되었느냐 하면,
아니다. 의식의 한 구석에서는 교인들보다 위에 있고자 했고,
혹 그에 부응하지 못한 교인이라도 있을 것 같으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실은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교인들이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들 중 어느 쪽인가를 대하기가
더 편한 게 아니라 다 똑같이 편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목사가 일반교인들보다 더 낮아야 하는 것도, 교인들이 목사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 똑 같은 위치에 평등하게 있어야 한다. 목사는 낮아질 수 있는 데까지
낮아져 교인들을 섬기고, 교인들은 교역자들을 겸손함으로 섬겨 동등해져야 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편한 것’과 ‘가벼운 것’을
같은 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편한 것’은 계급의식을 느끼지 않고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대등하게 대할 수 있음을 말하고, ‘가벼운 것’은 상대방이 사람다움의
 무게감이 없어 함부로 해도 좋을 것 같은 마음으로 대함을 의미한다. 그러니 누구라도
편하게 대해 오는 사람이 되어야지, 남이 가볍게 대해도 좋은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본말전도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만든다

한 여행자가 여행지에서 주일을 맞았다. 그 도시에서 설교를 제일 잘한다는
목사의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다. 설교가 끝나자 그는 속으로 탄복했다.
 “아, 정말이지 위대한 설교자다.” 속이 다 시원해질 만큼 훌륭한 설교였던 것이다.
다른 도시에서 그 다음 주일을 맞은 그는 역시 설교를 잘한다는 목사의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다. 설교를 듣고 있는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오, 주님, 주님은 역시 위대하십니다.” 뜨거워진 마음이 외치고 있었다.
전자와 후자 중 어느 것이 잘한 설교일까. 많은 사람들은 후자라고 할 것이고,
필자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후자처럼 하는 설교가 잘하는 설교이고,
그렇게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위대한 설교자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야 물론 그렇다.
그런데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전자는 영광을 설교자가 받고 후자는 그 영광을 성삼위 하나님께서 받고 계신데,
설교자가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잘하는 설교이고,
그 같은 설교를 하는 사람이 위대한 설교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을 본말전도(本末顚倒)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객전도(主客顚倒)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독교의 본질이 체질화된 설교자라면
이에 충분히 신경을 쓰게 되고, 설교를 듣는 교인들도 잘하는 설교와 그렇지 못한 설교를
분별하게 된다. 본말이 전도된 설교를 잘된 설교라 한다면 분별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라 교인들의 입맛에 맞추느라 ‘부자 되세요!’ 같은 카피와 동류의 설교를 하고,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어릿광대처럼 교인들의 폭소를 끌어내는 설교를 하려
애를 쓰는 목사와, 그런 설교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교인들을 보고 본말전도,
또는 주객전도의 실천자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설교의 그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우리는 몰라선 안 된다. 
교회 안에서가 됐건, 교회 밖 세상에서가 됐건 본말전도, 주객전도는 안 된다.
상식이 통하고 바른 것이 주도한 곳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잔가지가 본줄기를 맥도 못 쓰게 하여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객이 주인 노릇을 하는 일이 이상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매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 아닌가.
그로 인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데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뭉개고 있으니 본말전도도 모라라 철면피까지 되겠다는 것인가.
목사들은 교인들의 상전이 된지 오래고, 세상에서는 몸통을 보호하기 위해
꼬리자르기와 깃털 뽑기에 여염이 없는데, 다 본말전도 또는 주객전도로 맥이 이어진 것들이다.
목사치고 설교를 잘하려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목사의 사역 중에서 설교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반 교인들이 목사의 일상적 삶과 접하기가 쉽지 않은 도시 교회에서는
설교가 사역에서 가장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설교는 교회 성장에 가장 크게 기능하고 있다 해도 좋다. 양적 성장은 물론이고
질적 성장도 설교가 이끈다. 그러나 앞에서 든 두 예 중 전자는 양적 성장을 이룰지 모르나
교인들의 영혼은 병들게 하기도 한다.
필자도 설교 준비를 할 때면 실수함이 없이 잘하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는 시기가 있었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멋지고 폼 나는 설교를 하고자 했다.
그러나 세월이 얼마쯤 흐른 뒤 그 같은 기도와 바람 속에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자 하는
마음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교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를 깨달은 후부터는 설교준비를 할 때면 기도가
 “비록 실수를 한다 해도 전하는 말씀이 성도들의 가슴에 오래 남아 실낱만큼이라도
변화를 가져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로 바뀌게 되었다.
사실 설교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입으로만 하는 설교는 설교가 아닐 수 있다.
청중들만을 향하고 자기와는 관계없는 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입으로
 하며 온몸으로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온몸을 다 이용하여 제스처를 써 가며 하라는 말이 아니다.
일상의 삶을 통하여 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인 우리의 삶을 통하여 불신자들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 하나님의 일꾼들이여, 사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지 마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서, 특히 하나님의 큰일을
하는 데에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내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로 인해 감사하고 즐거워하며 살아 갈 때 영광을 받으신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 또한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오히려 나의 능력이나 내가 쌓은 업적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 가운데에서도 증명할 수 있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바리새인은 세리와 따로 떨어져 서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이시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 장면을 읽으며 ‘세상에 어쩌면 그럴 수가 있느냐’ 생각하며 자기와는
 무관한 것처럼 지나치고 말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자기의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기 바란다.
그러고도 그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그러고도 자기에게는 그 같은 모습의 그림자도 없다고
 한다면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당시에는 바리새인만큼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만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위선자들이라며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들의 외적인 면보다
내면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필자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는 데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한 것도,
나의 부족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다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당신의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어찌 영광을 받지 않으시겠는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로 인해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가운데,
 그분의 뜻에 따라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영광으로 그보다 더 큰 것이 없을 것이다. 단 그분의 뜻과 다른, 그분께서 제시하신 것이 아닌 방법으로 했을 경우를 말한 것일 뿐이다. 
나의 부족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능력이나 업적이 그분의 영광을 가린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능력이나 업적은 나를 교만하게 하기 쉽다.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고,
그래서 우월감이 생기면 그것이 교만으로 직결된다.
그러나 부족함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앞에서 말한 세리처럼 겸손하게 한다.
그렇다고 위축되어 자기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라는 말이 아니다.
겸손과 위축은 같지 않다. 겸손은 바람직한 성장을 이루나 위축은 자기비하를 가져 온다.
크리스천들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가운데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도 하나님의 일이 된다. 밥을 먹는 것도 여가를 즐기는 것도,
 잠을 자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일이 된다. 잠자리에 들어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이 든다면 잠을 자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선교라든가 봉사 같은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특히 교역자들은 이점이 간과되는 일이 없는 가운데 하도록 항상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단의 일이 되고 말기 십상이다.
본말이 전도되기 쉽다.
본말전도는 연막을 피워 사실이나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이는 자신을 유리한 입장에 놓기 위해 타(他)를 대상으로 하는 일이 많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한 욕심이 그 원인이므로 결국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내몰고 만다.
교인들이 부교역자들보다 담임목사가 더 대하기 편한 교회, 어떤가.
무한하게 평화롭고 넉넉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하늘나라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런 교회에서도 본말전도, 주객전도 같은 것들이 맥을 출수 있을까.

                                  충남대 명예교수 및 우리집공동체 원로목사 임종석.

하닷사 16-09-11 11:09
 
생각하고 분별하고 판단하여 행동하고 성경말씀에 따라 죄와 싸우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가 되기를
가츠 16-09-11 23:26
 
기독교 안에서 교회는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목사님들이 어떻게 인도해주시냐에 따라서.. 성경속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정말 진실된 빛으로 인도해주시면 정말 좋을 꺼라는 생각을 감히 하게 됩니다.
아멘!!
빗방울 16-09-24 22:22
 
귀하신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자신을 돋보이않게 태어나신것처럼 제자신도 돋보이지않고 항상 겸손하며 교만하지않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소피아 16-09-28 18:36
 
그분의 뜻에 따라 일을 하고 항상 낮은 자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홍석태 16-09-30 20:56
 
제 경험담이기도 하기에 이 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자신의 권위에 취해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맞는지도 모르는 목자라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슬픕니다. 저 또한 아는 것 하나 없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성경을 재대로 아는 목회자가 많아졌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봄날 16-10-02 10:25
 
항상 낮은 자리에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참된 목회자가 많아졌으며 좋겠습니다.
지뇽 16-10-03 21:28
 
내가 먼저 겸손하고 낮은자세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명탐정레옹 16-10-04 14:05
 
항상 낮은 자세로 살아가겠습니다.
행복가득 16-10-04 14:15
 
하나님으로  인해 힘든가운데에도 견디면서 감사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날들이었으면 합니다.
온새미로 16-10-06 16:00
 
저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기뻐하고 감사하겠습니다.
온새미로 16-10-06 16:01
 
언제나 가슴을 치는 말들로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저희를 옳은 길로 이끌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