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6-26 07:01
오늘 한국교회의 변형과 뒤틀림의 출발점 - 침신대 역사신학교수 남병두
 글쓴이 : 별빛
조회 : 2,484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은 한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파급 효과는 막대했다. 로마제국 황제의 개종은 곧 모든 국면에서 제국의 정치와 종교 생활을 뒤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거대한 변화는 한 시대에 끝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지속적인 흔적을 남겼다.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16세기 주류 종교개혁가들도 콘스탄티누스적 국가 교회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소위 ‘정교분리적’사회가 형성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서는 4세기 초부터 이루어진 ‘콘스탄티누스 전환’이 가져온 변화를 살펴보려고 한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면들이 없지 않았다.

우선 오랫동안 있어왔던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종식되고 믿음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또 로마제국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접할 기회가 주어졌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기독교적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일반 사회의 법률 제정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고, 로마 사회에서 노예와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결과들은 다음의 부정적인 결과들에 의해 거의 무의미하게 되었다.

첫째, 수많은 이교도들이 정치, 사회적인 특권이나 이권 때문에 교회로 대량 유입되면서(wholesale entrance) 교인됨의 기준이 심각하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중적인 신앙 행태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둘째, 교회가 제국이 제공해준 물질적 혜택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해하면서 무분별한 물질주의가 교회 내부로 침투되기 시작하였다. 과거의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물질을 포기해서라도 복음을 선택하는 영성을 보여준 반면에 콘스탄티누스 전환 이후의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 누리는 물질을 축복 개념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4세기 초 이후 기독교인들의 영성을 형성하는 데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셋째, 교회 내로 들어 온 많은 이교도들은 그냥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이전에 젖어 있었던 이교의 종교의식이나 관습을 그대로 가지고 교회에 들어왔다. 그들에게는 신앙의 대상만 바뀌었지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이 그렇게 바뀌지 않았다. 이제 교회 내에도 성상이나 화상이 보이기 시작했고, 교회건물은 안팎으로 화려하게 장식되기 시작했다. 예배의식 역시 이교의 영향과 제국의 의전절차에 따라 복잡하고 까다롭게 형식화되기 시작했다. 예배의식을 집례하는 교직자들의 의상 역시 화려해지기 시작하면서 평신도와의 구별은 더 심화되었다. 또 초기 기독교인들의 순교자에 대한 존경심은 이교의 가족신 숭배와 결합하여 서서히 성인숭배 사상이 움트기 시작했다.

넷째, 교회의 윤리와 조직체계의 세속화가 가속되었다. 교인됨의 기준이 약화됨에 따라 일반 사회에서 용인되는 생활방식들이 교인들의 삶에 팽배하게 되었다. 기본적인 신앙 윤리의식이 심각하게 낮아졌다. 또 각 지역의 교회는 제국의 행정구획에 따라 교구교회(parish church) 체제로 발전하게 되면서 마치 국가의 기관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교회가 그 지역 시민들의 종교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적 기관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교회의 교직체계 또한 로마제국의 계급제도에 영향을 받아 복잡하게 분화된 계급화 현상을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교회직위는 은사 개념으로보다는 계급으로 인식되었고, 이로 인해 교직자와 교인의 골은 더 깊어졌다.

다섯째, 초대교회의 종말에 대한 기대와 그에 따르는 다이내믹한 삶의 방식을 잃기 시작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가 실현된 것으로 착각했다. 그들은 교회가 마침내 제국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제국 내에서의 정치적 승리가 마치 그리스도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윌리엄 플레쳐(William Fletcher)가 “이전에는 세상의 미움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세상의 호의가 신앙의 시험대가 되기 시작했다”고 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기독교가 직면한 상황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었다.

여섯째, 기독교는 이제 역으로 박해하는 세력이 되었다.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환으로 공권력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단들이나 분파주의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황제는 신학적 문제로 야기된 분열을 막기 위해 공의회를 통해 신학적 획일화를 추구했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공권력 행사를 통해서 이루었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이교도, 유대인, 그리고 다른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것을 정당화했고, 이러한 일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일곱째, 교회는 이제 기독교를 보호하는 세력으로 로마 제국을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중요한 파트너로 인정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제국의 통치방식을 정당한 것으로 용인하기 시작했다. 제국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됨에 따라 세속권력의 폭력과 전쟁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국가교회 체제 안에서 교회는 정당전쟁의 논리와 성전(Holy War) 개념을 확립했다.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 이후 세상에 대하여 취한 태도는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던진 사탄의 시험에 굴복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권력과 종교적 권위를 내세워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는 그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고 로마 제국의 지배체제 안에서 안주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상의 왕국을 통하여 성취하려고 했다.

기독교인들은 이후로 세상의 권력과 통치이념 안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소진시켰고 힘을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영성을 키워갔다. 그들은 세상 체제의 윤리를 기독교 윤리와 동일시했고, 기독교 국가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했으며, 그 결과 국가체제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일에 앞장서게 되었다.
 
국가교회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세상과 교회의 이중적 잣대로 살게 만들었다. 그들은 계속 하나님의 사랑을 부르짖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십자군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침례교회 특성 되돌아보기- 중에서
                                                                                                                                  남병두 저

                                                                                                                  우리집공동체 박성훈

가츠 16-06-28 17:38
 
한국교회가 좀 더 하나님 안에서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홍석태 16-06-30 08:30
 
과거 억압과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기독교가 종교개혁을 통해 옳은 믿음을 실천하고자 하였으나 도리어 그것이 기독교가 하나님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군요. 결국 그런 것들이 기독교가 저지른 인류최대의 악행인 십자군 전쟁으로 이어졌으니 한탄스럽고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올바른 신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빗방울 16-06-30 11:37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을 멀리하고 세상과 권력 그리고 통치이념에 사로잡혀 일어나지말아야 할 십자군전쟁이 일어났네요. 슬픈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뇽 16-07-10 22:39
 
신앙의 대상만 바뀌었지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 생활방식이 바뀌지 않으며 교회건물 안팎과 교직자들이 화려하게 변화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안타레스 16-07-11 16:23
 
믿음의 시작이 교회가 되어서는 않되고, 철저히 나의 기회/선택에서 주어져야 진정한 믿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낚시질로 교인을 만들어 꾀어놓고는 돈을 뜯어내는 기업화된 교회에 구속될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의 깨달음대로 이웃을 사랑하며 돌보게 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