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30 14:12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소설)
 글쓴이 : 임종석
조회 : 3,698  
================================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소설) ================================


 * 아직 미완인데, <소설로 읽는 복음서―예수 그리스도>라는 제가 쓴 책이 있습니다. 사복음서를 하나로 묶어 소설형식으로 구성한 책이지요. 내일이 부활절을 맞아 그 가운데에서 그분이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으로부터 영광스럽게 이루신 부활까지의 부분을 여기에 미리 소개하고자 합니다.


  <죽 음>
  십자가의 고난의 날 예수는 멀지 않은 길을 먼 길보다 더 어렵고 힘들게 와서 골고다에 도착하였다. 아직 아침 아홉시였다. 

  이제 남은 것은 처형뿐이다. 군사들은 예수에게 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게 했다. 그는 마시려 하지 않았다. 군사들이 억지로 마시게 하려 했으나 완강히 거부하였다. 유월절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이제부터 나는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그대들과 함께 새 포도주을 마실 때까지 다시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을 것’이라고 한 자신의 말 그대로였다. 몰약은 마취 성분이 들어 있는 약재로 죄수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쓰기도 했는데, 그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잔’인 십자가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받기 위해 마시지 않았다.

  군사들에 의해 옷이 벗겨진 예수는 하체만 겨우 가린 채 준비된 십자가 위에 뉘어졌다. 십자가형에 처할 죄수는 처형 직전에 알몸으로 하거나 하체만을 가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의 팔이 십자가에 묶인다. 묶지 않고 못만 박으면 세웠을 때 체중 때문에 손이 찢어져 몸이 땅에 떨어지고 만다. 그의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 쓰인 죄명의 패도 붙여진다. 십자가처형에는 죄수의 머리 위에 그런 패를 붙이도록 되어 있었다.

  패를 본 대제사장들이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 쓸 것을 주장하였으나 군사들은 잘못 된 것이 아니니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패에는 죄명이 히브리어, 로마어(라틴어), 그리시아어로 쓰여 있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읽을 수 있었다. ‘유대인의 왕’이라니 참으로 이상한 죄명이었다.

  양팔과 양발 옆으로 한 사람씩 네 명이 다가간다. 그들 각자의 오른손에는 쇠망치가, 그리고 왼손에는 커다란 쇠못이 들려 있다. 다가간 그들은 저마다 그의 손 또는 발 위에 왼손으로 쥐고 있는 쇠못을 세운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돈다. 가슴들이 두근거린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숨소리뿐……. 오른손에 든 망치가 들려 올라가고 쿵, 쿵, 쿵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새어나온다. 참으려고 안간힘을 써 보지만 소용이 없다. 얼굴은 일그러지고 온몸에서 진땀이 흐른다.

  십자가가 세워진다. 아프다. 손이 아프다. 발이 아프다. 그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심한 고통의 잔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아들을 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가슴에는 더 큰 못이 박혔다. 그러나 기를 써 혼절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정신을 잃으면 아픔을 같이 나눌 수가 없다. 아픔을 같이 견디며 그리스도의 구속(救贖)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형장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말고도 두 여인이 더 와 있었다. 예수의 이모이자 글로바의 아내 살로메와 막달라 마리아의 두 사람으로 갈릴리 사역 때부터 예수를 따르는 여인들이었다.

  그녀들 역시 어머니 마리아만큼은 아닐지라도 가슴 찢기는 아픔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켜보며 고통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녀들 말고도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와 있었는데 많이들 형장까지 따라와 멀찍이에서 젖은 눈으로 처형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들이 많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옆에는 또 한 사람 요한이 있었다. 베드로는 잡힐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스승을 부인한 자책감으로 십자가가 아스라이 보이는 멀리에서 가슴을 쥐어뜯고 있었다.

  십자가를 진 것은 예수뿐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십자가의 하나는 그의 오른쪽에 또 하나는 왼쪽에 세워졌다. 둘 다 강도였다. 강도라고는 하지만 그리 불렸을 뿐으로 남의 금품을 빼앗아 죄인이 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로마의 유대 통치에 반대하여 저항하다 붙잡힌 정치범들이었다. 그들은 이런 정치범들도 강도라 불렀다.

  십자가 위에서는 단말마의 고통으로 생명들이 꺼져 가고 있는데 군사들은 그들의 옷을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들의 관습이었다.

  먼저 예수의 옷부터 나누었다.

  겉옷은 네 조각으로 나누어 한 조각씩 가졌으나, 속옷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통으로 짠 것이어서 나눌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이것은 자르지 말고 제비를 뽑아 가질 사람을 정하지.”
  제비가 뽑혀지고 그 속옷을 한 사람이 가졌다.

  이로써 ‘그들이 나의 겉옷을 나누어 가지고, 나의 속옷을 가지려 제비를 뽑았나이다’라고 하는 성경말씀이 이루어졌다.

  형장은 길가에 있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려고 이미 오래전에 이곳을 십자가형의 처형장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십자가형은 반역이나 살인과 같은 중죄인을 처형하는 방법이므로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의 죄명을 쓴 패를 보고 머리를 흔들며 욕을 한다.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다시 짓는다는 사람이 왜 저래? 야, 이놈아, 남 걱정 말고 네 자신이나 구원해라!”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위에서 내려와 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과 같은 지도자들도 조롱에 가세한다.
  “다른 사람은 구하면서 제 자신은 저러고 있다니, 쯧쯧. 이스라엘의 왕이라며? 그렇다면 어디 한 번 그 위에서 내려 와 봐!”
  “그래, 그래, 그러면 우리가 너를 믿겠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큰소리를 친 자 아냐? 그러니 하나님께서 당장이라도 구해 주실 거 야. 제 입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그러지 않겠어?”
  예수 옆 십자가의 죄수 하나도 덩달아 욕을 한다.
  “너, 그리스도라며? 그런데 왜 이러고 있어? 너도 우리도 구해 봐!”
  극심한 고통 가운데에서도 이러는 것을 보면 어떻든 보통 사람은 아닌 성싶다. 
  고통스러워 일그러진 얼굴로 다른 죄수 하나가 말한다.
  “너도 같은 벌을 받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아?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가 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없으신데…….”
  그리고 고개를 예수 쪽으로 돌리며 말한다.
  “주님, 주님께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전부터 예수에 대해 들어 알고 있던 이 사람은 그를 지금 직접 보고 그가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믿음은 논리로서가 아니라 은혜로 갖게 되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예수의 두 눈에는 고통 가운데에서이지만 안온한 빛이 감돌았다.
  “내 약속하오만, 그대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오.”
  이게 어떻게 중죄를 범해 처형당하는 죄수가 십자가위에서 죽어 가며 들을 수 있는 말인가. 선을 쌓고 또 쌓아도 듣기 어려운 축복의 말이 아닌가. 구원은 선행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것임이었다.

  ‘낙원’이란 원래 ‘벽으로 두른 정원’이라는 뜻의 페르시아어에서 온 말이다. 페르시아에서는 왕이 백성 가운데의 한 사람을 특별히 대접하여 영광스럽게 해 주고자 할 때 그를 길동무로 하여 정원을 몸소 함께 걸었다. 그러므로 왕의 정원을 왕과 함께 걸은 백성은 그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겼다. 따라서 강도에게 한 예수의 말은 하늘나라 정원의 길동무로 그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회개한 강도에게서 보듯이 때가 늦어 예수에게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 일은 결코 없다. 만사에는 때가 있어 한 번 지나가면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예수에게 돌아가는 일은 그렇지 않다. 심장이 살아 뛰고 있는 한 그들을 향한 예수의 초대는 계속되고 있다. 

  강도에게 말을 하고나서 예수는 힘겹게 머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해서이니 저들을 용서 하여 주십시오.”
  저들이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한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공생애를 통하여 전한 복음을 거절하고 자기와 제자들을 핍박한 사람들도 포함한다.

  예수의 눈길이 밑으로 향한다. 가까이에 어머니 마리아와 이모 살로메,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서 있고, 그 옆에 제자 요한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육신의 고통에 마음의 괴로움까지 더해진다. 
  “어머니, 보세요.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아들(人子)로 낳아 길러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담아 이제 아버지께로 돌아가며 한 말이었다.
  “요한, 보세요. 그대의 어머니시오.”
  요한에게 한 이 말은 그가 전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사람은 모두가 나의 형제와 자매요 또한 어머니’라 했던 말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었다.
말을 듣자 요한은 가슴이 뭉클하며 눈에서 왈칵 눈물이 솟았다. 스승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로 공경하며 모시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세 시간정도 지나 정오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가장 밝아야 할 한낮인데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다.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 어두움은 계속되었고,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세 시가 되었다.

  이때 예수가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하는 의미의 말이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아 벽을 쌓는다.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단절된다. 그런데 그 단절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 오던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 된다.

  예수에게는 조그마한 죄도 없다. 그러나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들의 죄를 모두 맡아 짐으로 죄인이 되어 그 죄 값으로 십자가에 달려 지금 죽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다 지고 십자가에 달림으로 아버지와의 단절을 경험하는 지금, 그는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큰 영적인 아픔을 당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단절, 그것은 잠시 동안이기는 하지만 그분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들이 아니라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은 ‘아버지’일 수가 없다. 사람들이 부르는 대로 ‘하나님’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수의 부르짖음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가 말한다.
  “저 사람, 엘리야를 부르고 있어.”
  ‘엘리’를 엘리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예수는 이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알았다. 세상에 와서 사역을 하여 마치고, 이제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그 죄 값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며 받는 고통과, 그보다도 더 심한 아버지와의 단절이라고 하는 버려짐의 아픔이 끝난 것이다.

  “내가… 목마르다.”
  너무도 많은 피를 흘린 것이다.

  병사 하나가 한쪽에 놓여 있는 항아리로 급히 달려갔다. 자기들이 마시려 준비해 둔, 값 싸고 맛이 신 포도주 항아리였다. 그는 긴 막대기에 해면을 달아 항아리의 포도주를 머금게 한 뒤 달려가 예수의 입에 대었다. 예수가 그것으로 입안을 적신다.

  “그냥 놔둬. 엘리야가 구하러 올지도 모르잖아.”
예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그의 이적을 직접 본 사람들도 있고, 그것을 전해 들어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실낱같은 기대는 애초부터 빗나간 것이었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 보내시는 계획단계부터 들어 있었다.

  “다 이루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역을 자신의 죽음으로 모두 마치게 되었다는 선언이었다.

  “아버지, 아버지의 손에 저의 영혼을 맡깁니다.”
그의 세상에서의 마지막 말이다. 이 짧은 말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그는 고개를 늘어뜨리며 숨을 거두었다.
  인류역사의 절정의 순간이요, 모든 인간의 희망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땅이 심하게 흔들렸다. 여기저기에서 바위들이 쪼개진다. 아들의 죽음에 가슴 찢기는 아픔으로 치는 하나님의 몸부림이었다.

  땅이 흔들림에 따라 봉해진 동굴무덤들도 많이 열렸다. 예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죽음의 능력을 파괴시켜 부활을 가져오는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었다. 무덤의 열림은 그 속에 잠든 이들이 예수의 부활에 힘입어 일어나 그가 그런 것처럼 사람들에게 나타나 모습을 보이는 것의 예고였다.

  한편 성전에서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드리워져 있는 두꺼운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겨 갈라졌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 번 들어가 죄를 씻는 속죄(贖罪)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지극히 거룩한 곳이다. 그런데 예수의 죽음으로 휘장이 찢겨 지성소는 사라지고 대제사장도 필요 없게 되었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의 휘장은 예수의 육체를 상징한다. 그러기에 그의 죽음은 휘장이 찢기는 일대 사건을 가져왔다. 따라서 이제 지성소가 아닌 어디에서나 대제사장 아닌 믿는 사람 모두가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가 왕 같은 제사장, 대제사장이 된 것이다. 그가 인간들의 모든 죄를 지고 대신 죽었기에 죄로 인해 가로막혔던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회복 된 것이다.

  지진이 지나가고 세 시간 동안이나 빛을 잃었던 해가 본래대로 돌아와 밝음을 되찾자 넋을 잃고 있던 사람들도 다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일을 처음부터 보아온 사람들, 특히 군사들과 그들의 백부장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분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어!”
  백부장의 말이다.

  이날은 안식일의 예비일이자 유월절의 예비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일은 당연히 안식일이고, 안식일에는 시체를 십자가에 두어서는 안 된다. 율법에 따르면 나무에 달려 죽은 시체는 저주를 받은 것이므로 그대로 둔 채 밤을 맞아서는 안 된다. 안식일이 부정하게 됨으로 해가 지기 전에 장사를 지내야 한다. 그들의 하루는 해가 짐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유대의 지도자들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신의 다리를 부러뜨려 십자가에서 내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십자가형은 반역죄나 살인죄 등의 중죄를 지은 자들에게 적용되는 처형방법이다. 그러니 시체를 그대로 두어 날짐승의 먹이가 되게 함으로 전시적 효과를 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이날이 평일 아닌 예비일이기에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소한 일로 그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사실 예수는 죄가 있어 죄인이 되어 십자가형에 처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빌라도 그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군사들이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자들의 다리를 한 사람씩 부러뜨렸다. 그렇게 함으로 실낱같이 남아 있는 숨을 거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다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미 숨을 거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고, 찔린 자리에서는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죽음을 확인하는 관례상의 절차였다.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성경의 말씀 그대로였다.


  <부 활>

  십자가형에 처해지게 된 과정으로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의 예수에 대한 모든 일을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이 그이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으로 부자일 뿐 아니라 선하고 의로워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예수를 만나 그를 믿게 되었고 그 후로부터는 하늘나라를 사모하여 그 나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회의 예수에 대한 재판 때에는 유일하게 처형을 반대하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그도 예수의 제자였으나 신분이 신분인지라 드러내놓고 밝히기가 쉽지 않았다. 공회의 모든 의원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그의 제자라는 것을 밝힌다는 건 자신의 몰락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가이사의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을 본 그는 오히려 담대해질 수가 있었다. 스승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일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이 확신으로 변한 것이다.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아니 믿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난 기적이 분명했다. 

  그 같은 기적은 또 한 사람 니고데모에게도 일어났다. 그 역시 학식과 재력을 겸비하여 유대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회원으로 한밤중에 예수를 찾아간 적이 있는 사람이다. 예수를 살해하려는 공회원들의 생각을 반박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신중하고 우유부단하여 믿는 데까지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이유로 예수의 제자라는 것을 숨기고 있기도 했다. 그런 그가 예수의 죽음을 보고 오히려 담력을 얻어 그의 제자임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요셉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공회원이라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그를 만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어떠한 일이 닥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빌라도는 예수가 숨을 거두었다는 요셉의 말을 믿기가 어려웠다. 십자가에 달린 뒤 이삼일이 지나서야 숨을 가두는 경우가 많은데 여섯 시간만이라니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형장의 백부장을 불러 그의 죽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 시신을 요셉에게 넘겨주라고 명령하였다.

  이때 니고데모는 서둘러 몰약이라고 하는 최고급 향료와 침향이라고 하는 가루로 된 향을 어린아이의 몸무게만큼이나 준비하였다.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로도 쓰이는 것들로 예수의 장례를 위해서였다. 이 정도의 양이라면 왕족에 대한 예우로나 쓸 수 있는 양이어서 부자이기에 가능했다.

  요셉과 니고데모 두 사람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예수의 시신을 무덤 옆으로 옮겼다. 다행히 무덤은 형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요셉이 자기를 위해 바위를 파 만든 것으로 한 번도 장사지낸 적이 없는 새 무덤이었다. 그들 유대인의 장례 풍습으로는 가족이 죽으면 한 무덤에 장사지내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그 무덤은 아직 새 것이었다.

  그들은 향료를 뿌려가며 시신을 세마포로 정성스럽게 싸서 무덤에 안치하였다. 요셉이 마련해 온 세마포였다. 그리고 준비된 바위를 굴러내려 무덤을 막았다. 장정 예닐곱 명이 아니면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큰 바위였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두 여인은 형장에서 따라와 예수의 장사를 끝까지 지켜보며 오열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장례가 끝나자 사람들을 따라 내려 올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은 안식일인데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빌라도를 찾아갔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도 이래저래 안심이 되지 않아서였다.
“총독 각하, 그 거짓말쟁이가 말입니다, 자기가 죽으면 사흘 뒤에 살아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명을 내려 그 사흘이 될 때까지 그 자의 무덤을 단단히 지키게 하여 주십시오. 그 자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다 숨겨 놓고는 살아났다고 헛소문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해질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일로 더 이상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요? 경비병을 내어 줄 테니 당신들이 지키든지 말든지 하시오.”
  그들은 병사들을 데리고 가서 무덤을 막아 놓은 바위와 입구 사이의 틈을 진흙으로 발라 봉한 다음 인을 찍었다. 조그마한 이상만 생겨도 즉시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일을 끝낸 그들은 병사들에게 무덤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명령하였다.

  무덤에서 내려온 세 여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그날의 해가 지자 향유를 준비하였다. 장례 때 향료를 충분히 썼다는 걸 모르지 않았으나 그녀들의 예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그렇게 하게 한 것이다.

  사실 시체에 손은 대는 것은 부정한 일이며 장사지낸 시신에 다시 향유를 바른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왕에게는 그런 관례가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녀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왕 중의 왕인 예수를 기리고 있었던 것이다.

  향유를 준비한 그녀들은 날이 밝기를 여삼추로 기다려 무덤으로 향하였다. 
  “무덤을 막은 바위를 어쩌면 좋지?”
  가는 길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말한다. 사모하는 마음에 향유를 준비하기는 했으나 바위를 굴려낼 대책 같은 것은 없었다. 누군들 그녀들의 이런 황당한 생각에 호응을 해 주겠는가.
  “그러니 말이에요. 누가 우리를 위해 바위를 옮겨 주겠어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이다.

  무덤에 도착하니 해가 막 솟아오르고 있다. 
  “저기!”
  앞서가던 막달라 마리아가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무덤을 보며 소리친다. 막아놓았던 바위가 한쪽으로 굴려진 채 무덤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자기들이 오기 전에 지진이 일어남과 동시에 천사 둘이 바위를 옮겨 놓았던 것인데, 이를 알 리 없는 그녀들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진과 함께 있었던 일들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다.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이다. 그들은 그때 갑작스레 일어난 심한 지진에 그대로 바닥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체질이라도 하듯 심하게 땅이 흔들리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진이 지나가고 고개를 든 그들은 기절하여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 무덤의 바위가 굴려져 있고 그 위에 앉아 있는 찬란한 모습의 천사들이 눈에 든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번개 같고 옷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희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나자 그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은 너 나를 가릴 것도 없이 슬슬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열려 있는 무덤을 보고 놀란 여인들은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를 쓰며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 예수의 시신이 없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그런데다가 이 어쩐 일인가. 천사 둘이 자기들의 양 옆에 하나씩 서 있지 않은가. 처음부터였는지, 아니면 나중에 와서 서 있게 된 것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그들을 보았을 때 그녀들은 놀라 얼굴이 땅에 닿도록 바짝 엎드렸다.

  “무서워하지 마라.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찾느냐? 예수님은 말씀해 오신대로 살아나시어 여기에 계시지 않다. 너희들이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누우셨던 자리가 비어 있지 않느냐? 갈릴리에 계실 때에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을 생각해 보아라.”
그제야 그녀들은 정신이 좀 들어 예수가 생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서 가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시어 갈릴리로 가셨으니 거기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여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하고자 한 말이다.”
  그녀들은 일어났으나 아직도 두려움이 덜 가셔 도망치듯 무덤을 빠져 나왔다.

  제자들에게 사실을 알리려고 길을 서두르면서도 그녀들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만은 정말이지 기뻤다. 설레었다.

  무덤은 예수를 가두어 두지 못했다. 병사들이 지키는 유례없는 수고도 소용이 없었다. 사망이 그를 묶어 두지 못한 것이다. 그가 사망의 사슬을 끊고 새 생명으로의 문을 열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녀들은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으로 왔다.

  제자들은 스승이 잡히자 모두 도망갔었다. 베드로와 요한도 처음에는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쳤으나 곧바로 멀찍이 떨어져서이기는 하지만 대제사장의 관저까지 따라갔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며 스승과의 관계를 부인하여 천추의 한으로 남을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런 제자들인데도 예루살렘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다시 만나 혹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피해 숨어 있었다. 그들 열한 제자 외에 다른 제자들도 몇 사람 합류하여 같이 숨어 지냈다.

  그녀들은 제자들에게 자기들이 보고 들었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너무도 놀랐던 탓으로 횡설수설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제자들은 당연히 믿을 수가 없었다. 생전에 스승이 한 말을 생각하여 그녀들의 말을 믿었어야 했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제자들의 반응에 그녀들도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이 시신을 훔쳐 갔나 봐요. 그런데 어디에다 두었는지 모르겠어요.”
  너무도 놀라운 상황이었던지라 자신들의 머리가 어떻게 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베드로가 일어나 나가니 요한도 따라 나섰다. 어쨌든 무덤을 확인해 봐야 했다. 막달라 마리아도 따라 나섰다. 다른 제자들은 쓸데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그대로 있었다.

  요한이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하여 보니 여인들의 말처럼 무덤이 열려 있다.  안을 굽어다보니 세마포가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뒤따라온 베드로가 뭘 생각할 사이도 없이 안으로 들어간다. 요한도 따라 들어갔다. 보니 시신이 뉘어 있던 자리에 세마포가 놓여 있고, 머리를 감았던 천도 세마포와 조금 떨러져 놓여 있다.

  둘은 시신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다른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이때까지도 스승 예수가 죽음에서 살아나리라는 성경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들이 가 버린 뒤에도 무덤 밖에 혼자 남아 소리를 내어 울고 있었다. 아까 왔을 때 천사에게서 들었던 말은 착각이었던 듯 의식에서 지워지고, 사라진 시신으로 인한 슬픔을 못 이겨 울고 있었다. 유대인들의 예수에 대한 적대감을 생각하면 그들이 시신을 훔쳐다가 훼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들 사회에는 그런 일도 없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보지 못했던 아까의 그 천사 둘이 아직도 안에 있다. 한 천사는 예수가 누웠던 머리 쪽에, 다른 천사는 발 쪽에 서 있다. 그녀는 처음만큼은 아니었지만 무척 놀랐다.

  “어찌하여 우느냐?”
  이유를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아까 말했는데 왜 벌써 잊고 시신이 없어졌다며 우느냐는 질책이었다.
  “우리 주님의 시신이 없어졌는데, 누가 어디로 옮겨 갔는지 모르겠어요.”
  천사의 지금의 말에 아까의 말이 생각나 믿어야 했으나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이때였다.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놀랍게도 부활한 예수가 옆에 서서 말한다.
  “자매여, 왜 우시오? 누구를 찾고 있소?”
  그녀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나타나 자기에게 말을 하고 있는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슬픔이 너무도 커 그냥 막연히 동산지기일거라 생각했다. 알아보려 했다 해도 부활한 예수는 생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저, 당신이 시신을 옮겨 갔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모셔 가겠어요.”
  예수가 측은해 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부른다.
  “마리아!”

  그녀가 고개를 들고 예수를 본다. 어? 반짝 뜨인 눈에 반가움이 가득하다.
  “선생님!”
  생전의 모습이 아닌데도 반짝 뜨인 육의 눈과 함께 밝히 뜨인 영의 눈이 그를 알아본 것이다. 

  반가움이 너무도 커 죽었던 그가 어떻게 여기에 서 있는지 같은 건 생각조자 하지 못했다, 왜 이제야 알아보게 됐는지 같은 것도 알 필요가 없었다.
  “잘 있었소?”
  다정하고 부드러운 음성이다.
  (그래, 부활하신 거야!)
  그제야 깨달음이 왔다. 햇살이 비쳐 드는 것처럼 가슴이 밝아오며 훈훈해진다.

  그녀는 엎드려 절하며 예수의 발을 잡았다. 부활한 예수를 만난 감격과 기쁨과 사랑으로 덥혀진 경외심의 몸짓이었다. 접촉만큼 더 확실한 사랑의 증명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를 붙들고 있지 말고 어서 가서 내 형제들에게 말하세요. 나는 나의 아버지 곧 그대들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그대들의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오. 그러나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으니 그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세요.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오. 두려워 말고 어서 가세요.”
  ‘형제들’이란 제자들을 가리켜 한 말이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돌아오니 제자들이 울고 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스승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를 만났던 자초지동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다.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더 믿었다.

  천사들을 보고 놀라 달아나던 병사들은 얼마 못 가 길을 돌이켜 다시 무덤으로 돌아갔다. 임무소홀로 문책을 당할까 봐 겁이 나서였다. 그러나 가까이에는 가지 못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숨을 죽인 채 엎드려 무덤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자기들 가운데 몇몇을 대제사장들에게 보내어 있었던 일을 보고하였다. 빌라도에게가 아니라 대제사장에게 보낸 것은 자기들에 대한 지휘권을 그들이 위임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고를 받고 놀란 대제사장들은 장로들을 불러 모아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의논하였다. 자기들이 예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병사들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고 보면 그가 부활한 것은 거의 확실하지 않은가.

  그들은 이때라도 뉘우쳐 회개해야 했다. 예수가 부활했다면 자기들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거스르는 것이 된다는 것을 생각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하지 않았다. 사단의 화인을 맞아 영적 분별력이 사라진 그들이었다.

  그들은 논의 끝에 병사들에게 말했다.
  “밤에 예수의 제자들이 숨어들어 그의 시체를 훔쳐 갔다고 말하여라. 만일 사실이 알려져 총독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우리가 책임지고 너희를 구해 줄 것이다.”
  그들은 병사들에게 실로 많은 돈을 주어 보냈다.

  병사들은 무덤으로 돌아갔고, 그 뒤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들은 대로 소문을 내었다.

  그날, 그러니까 여인들과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에 갔다 오고 병사들이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던 날, 열한 제자가 아닌 다른 제자 두 사람이 엠마오라고 하는 마을로 내려가고 있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을 보고 와서 다른 제자들에게 절망스러운 보고를 하였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고는 하지만 신빙성이 없어 보여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 두 제자는 실망하여 거기에 더 이상 함께 머물러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는 삼십 리가 조금 못 되는 거리였다. 길을 걸으며 두 사람은 줄곧 예수 이야기만 하였다. 생전에 보고 들었던 이야기, 잘못된 재판으로 처형당하고 시신이 사라진 일 등의 이야기를 하였다.

  얼마쯤 갔을 때 부활한 예수가 다가와 그들과 같이 걸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뒤따라 온 길손이건 했다. 부활한 몸이기에 생전의 몸과 같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들 하시나요?”
  예수가 물었다.
  “예루살렘에서 오는 것 같은데, 요 며칠 사이에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도 모른단 말이오?”
  두 사람 가운데 글로바라는 제자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예수의 말에 다른 제자가 대답한다.
  “당신도 나사렛 예수를 모르지는 않겠지요? 그분께서는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행하신 일과 하신 말씀에 능력이 있는 예언자셨어요.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게 했지요.
그런데 우리는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랬는데… 처형당하신지 사흘째에요.
그런데 글쎄 오늘 아침에는 말예요, 우리들 가운데 여자분들 몇이 무덤에 갔다가 시신이 없어진 것을 보고 와서는,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말하는 천사를 보았다는 거예요. 말을 듣고 다들 놀랐지요. 그래서 남자 두 분이 확인하러 달려갔는데 여자 분들의 말처럼 시신이 없더래요.”

  이에 예수가 말한다.
  “어찌 그리들 어리석소? 예언자들이 했던 말을 어찌 그리 더디 믿느냐는 말이오.”
  들어 화가 날만한 말이었으나, 다정함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음성에 그들은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며 귀를 기울였다.
  “그리스도가 그 같은 고난을 모두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소?”

  그는 이어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의 글로부터 시작하여 성경전체에 걸쳐 자기에 관해 기록된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엠마오 마을 어귀까지 왔고 그는 가던 길을 계속 하려 했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저희 집에 가시어 묵어가시지요.”
  글로바가 말했다.
  그는 거절하지 않고 따라갔다.

  식사가 준비되고, 그가 빵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린 뒤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가 자기들의 스승임을 알아보게 되었다. 순간, 그는, 그러니까 그들의 스승 예수는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들이 말했다.
  “아까 오면서, 선생님께서 성경을 풀어 말씀해 주실 때 가슴이 뜨겁지 않았어?”
  “그래, 맞아. 마치 모닥불이라도 피워 좋은 것처럼 뜨거웠어.”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세. 가서 모두에게 말해야지.”
  “그래, 가세. 모두들 얼마나 놀랄까?”

  그들은 어둠이 깔린 시골 길을 서둘러 걸었다.

  도착해 보니 열한 제자와 다른 제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분위기가 낮과는 사뭇 다르다. 상기된 얼굴들이다.
  “주님께서 정말로 살아나셨어요. 베드로에게도 나타나셨어요.”
  두 사람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막달라 마리아가 조금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베드로가 밖에 나가 한적한 곳에 혼자 있을 때 예수가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도 자기들이 만난 예수에 대해 자초지종 들려주었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옮겨지는 은혜가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놀라움에 앞선 기쁨으로 부활의 은총을 찬미하였다. 감동과 환희의 물결이  가슴 가슴에 일렁였다. 

  그때였다. 문이 잠겨 있는데도 예수가 나타났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늘 그러듯이 유대의 지도자들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있었는데 사람이 나타났으니 유령인가 하여 다들 놀랐다.
  “잘들 있었소?”
  그들은 무서워 벌벌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무서워들 하는 거요? 무엇 때문에 아직까지도 의심을 하느냐는 말이오.  말을 전해 듣고 의심하더니, 이제 나를 직접 보고도 모른다는 말이오?”
  그는 제자들의 믿음 적음을 꾸짖었다.
  “다들 나의 손과 발을 보세요. 그리고 이 허리의 상처도 보세요. 틀림없는 그대들의 선생 내가 아니오? 자, 만져 보세요.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그대들이 보는 것처럼 살이 있고 뼈도 있소.”

  그는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내밀어 보여 주고, 허리의 상처도 보여 주었다. 그때서야 그들은 스승 예수를 알아보고 너무도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뭐든 먹을 것이 좀 없소?”
  제자 하나가 구은 생선 한 토막을 주니 그는 받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먹었다.

  이로써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예수의 부활을 조금도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대들에게 평강이 있기를 바라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대들을 세상에 보내오.”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예수가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승천을 앞둔 지금 그 사명을 제자들에게 승계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로 중요한 시점의 실로 중요한 말이었다. 세상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을 승계 받은 제자들에게 숫한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는 것을 안 그는 무엇보다도 평강을 빌어 격려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어 제자들을 행해 숨을 내쉬며 말했다.
  “성령을 받으세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면 거기에서는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다. 무에서 유가 나타난다. 없던 지혜가 생기고 무능에서 능력이 싹튼다. 그러므로 자기의 사명을 승계 받은 제자들은 험난한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성령부터 받아야 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때 받은 성령은 비로 말할 것 같으면 땅을 온통 적실만큼 만족한 것이 아니었다. 잠깐 뿌리고 지나간 해갈 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만족스러운 비는 자신이 약속한 대로 승천하여 보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고, 그러자 그 흙 사람은 살아 숨을 쉬게 되었다. 예언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기야, 사방에서 불어 와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게 불어 살게 하라’라 말하니 정말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환상을 보았다. 성령은 그러한 생기와도 같은 존재요, 숨은 생기를 연상케 한다.

  그가 이어 말했다.
  “누구의 죄든지 그대들이 용서하면 그 죄는 용서를 받을 것이고, 용서하지 않으면 그 죄는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오.”

  하나님 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권한이 없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권한이 있다니 무슨 말인가.

  사람은 누구라도 남의 죄는 용서할 수는 없어도 자기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가 다 용서를 받는 것은 아니다. 용서받기 위해서는 그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자복(自服)하고 회개(悔改)하는 것이다. 아무리 크고 무서운 죄라 할지라도 철저히 회개한다면 그 죄는 도말되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

  그러니까 그의 말은,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용서가 있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징벌이 따르는데, 이제부터 그대들이 세상에 나가 그와 같은 사실을 전하라는 것이다. 결국 제자들이 전하는 예수의 복음을 듣고 따르며 지은 죄를 회개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것이지만, 그러지 않고 복음을 거절하여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말을 마친 예수는 들어올 때도 그랬듯이 언제인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제자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부활한 예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똑, 똑똑, 똑’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그들만의 신호였다. 문을 열어 주니 도마가 들어온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한 사람이 말했다.
  “여기에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가 다 보았어.”
  다른 제자들도 그에 덧붙여 설명을 하느라 부산하다. 그러나 그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나더러 또 그런 말을 믿으라고? 난 말이야, 내 눈으로 직접 선생님 손의 못 자국을 보고, 손가락으로 못 박히셨던 자리에 찔러 보고,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어.”
  이것이 죽은 나사로를 보러 가자던 스승 예수의 말에 위험하다며 다들 반대 했을 때, ‘우리도 선생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했던 그 용감한 도마의 말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나고 이레가 지났으나 아직 그들은 그 집에 그대로 있었다. 오늘은 도마도 같이 있었다. 밖에는 예수의 시체를 그 제자들이 훔쳐 갔다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유대의 지도자들이 그들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외출은 될 수 있는 대로 자제하고 잠시라도 밖에 나가게 되면 조심에 조심을 거듭했다. 문단속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또 예수가 문이 잠긴 방으로 나타났다. 이번에는 모두가 그인 줄 알았다.
  “그대들에게 평강이 있기를 바라오.”
  모두에게 말하고 나서는 도마에게 입을 연다.
“도마, 자, 내 손을 보아요. 그리고 손가락으로 찔러 보고,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봐요. 그래서 못 믿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세요.”

  도마는 놀라고 또 놀랐다. 무엇보다도 부활한 예수가 나타난 것이, 그것도 문이 잠긴 방으로 나타난 것이 놀라웠고, 자기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한 것이 놀라웠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 엎드려 소리쳤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디두모라는 별명을 가진 도마, 그는 의심이 많아 무엇이든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설피 믿으며 큰 믿음인양 떠벌리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확신이 서면 온몸을 던져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부활한 스승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아들일 뿐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라는 것까지 보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예수가 말했다.
  “그대는 나를 보았기에 믿소? 그러나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더 복이 있소.”
  육체의 눈이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이 더 복이 있다는 말이다. 보지 않고 믿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