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4-05 14:16
국민의 심판 날이 다가왔다.
 글쓴이 : 지은
조회 : 306  

- 애국자가 따로 있나, 국민주권 바로 행사하면 애국자지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10-12)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人間世上)에 옳기만 한 사람(義人)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내면에 죄성의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도 드리워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악한 사람(惡人)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은 사람으로서의 그 형상(愛;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도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세상에 최선은 존재할 수 없다. 차선, 그도 아니면 차차선, 삼선, 사선… 이 있을 뿐이다. 최악도 그렇다. 차악(次惡), 차차악, 삼악, 사악… 이 있을 뿐이다. 하물며 정치권에서 최선을 찾으려한다면 오산이다. 이에 정치를 뭘로 보고 하는 말이냐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를 일이기는 하다. 하기야 예전에는 국회의원을 가리켜 ‘선량(選良)’이라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선량(選良)’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난 인물을 가려 뽑는 일’이고 또 ‘그렇게 뽑힌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선량(善良)’한 사람을 가려 뽑아 뽑힌 사람이 국회의원이라는 말도 된다.

그런데 지금도 국회의원을 그렇게 보는 사람이 있을까. 이를 놓고 본다면 ‘선량(選良)’이라는 말이 사라져 사어(死語)가 된 것은 다행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국민의 심판 날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한 편에서는 ‘이(재명)·조(국) 심판’을 외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윤석열 정권 심판’을 주장하고 있는데, 국민(유권자)이 이에 대한 심판관이 되어 나라의 주인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날이 온 것이다.

주인이 종으로 가려 뽑아 놓았더니 주인행세를 하는 일이 이제껏 반복되어 왔는데,
이번 선거에선 그 맥을 끊어 놓아야 한다. 끊을 수 없다면 안간힘을 다 써서 약화시킬 수 있는 데까지 약화라도 시켜야 한다.

방법은 달리 없다. ‘이(재명)·조(국) 심판’과 ‘윤석열 정권 심판’ 양자가 다 타당한 면이 있고,
그렇지 못한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자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좀 더 타당하고,
좀 더 그렇지 못한 쪽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좀 더 타당하고
좀 덜 그렇지 못한 쪽의 손을 들어 주는 수밖에 무슨 방법이 또 있겠는가.

문제는 어떻게 좀 더 나은 쪽을 가려내느냐에 있다. 한 편에서는 지난 정권이 거덜낸 국격을
이번 정권이 들어서 드높였다 기염을 토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전 정권에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시켜 향상시켜 놓은 국격을 현 정권이 파탄냈다 목청을 돋운다. 현 정권은 전 정권이
민주주의를 파탄냈다 하고, 전 정권은 현 정권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한다.
양자가 다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또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편이 조금이라도 더 사실(fact)에 가깝냐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는 선입견을 배제한 중심 잡힌 생각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선거가 가까워서 하는 말이나 행동은 이 편이고 저 편이고 간에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국민을 속이려는 속임수로 보면 틀림없다. 투표 날이 임박할수록 약속들이 늘어나고 움직임
또한 활발해진다.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그럴 생각이 있다면 미리부터 할 일이지 왜 하필이면 투표 날이 임박해서야 하는가.
이번 총선에서 여·야가 쏟아낸 약속대로 시행하려면 몇 년간의 나라예산이 소요될 것이다.
엉터리 공약이라는 말이다. 빌공자의 공약(空約)이라는 말이다.

민생이 어렵다 하면 여고 야고를 가릴 것 없이 써먹는 단골메뉴가 있다. 재래시장을 찾는 것이다. 될 수 있는 대로 기자들을 많이 대동하여 떡볶이도 먹고 어묵도 먹고, 상추도 사고 달래도 사며
서민 코스프레를 한다.

나의 중학시절 항간에 은밀하게 오갔던 일화가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참모들을 대동하고 시장을 방문하여 상인들에게
물건 값을 묻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사기도 했다. 사전에 참모 중 일부가 시장을 돌며 상인들에게 물건 값을 어떻게 말하라 일러두었기에 영문을 모른 대통령은 아주 싼 값으로 물건들을 사며
우리나라가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라고 몹시 기분 좋아 했다.
실제 물건 값과의 차액은 대통령 일행이 지나간 뒤 참모 중 누군가가 지불했다.

이게 사실인지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 무렵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하나 아는 것이 있다.

몇 학년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생시절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탄 기차가 전라선을
상행하였음으로 이를 환영하기 위해 동원된 전교생이 임실역으로 갔다.
개나무 전설로 유명한 오수(獒樹)와 전주(全州) 사이에 있는 작은 역이다.

그런데 사단이 났다. 당시에는 산판(山坂)이라 하여 산의 나무들을 무분별하게 벌목하는 일이
성행했는데, 이렇게 베에 낸 통나무들이 실려 가기 위해 임실역 빈터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걸 지나가는 대통령이 볼까봐 당국에서 거적 같은 것들로 온통 덮어 놓았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고등학교도 같이 있었는데,
그 고등학생들이 그 거적들을 대통령 각하도 실상을 아셔야 한다며 걷어내었다.
그걸 당국자들은 대통령 각하가 괜히 걱정하시면 안 된다며 말리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는 아주 오래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이니 사실임이 틀림없다.
오늘날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때의 대통령이 포진된 심기경호원(?)들로 인해
현실을 보지 못했듯이 오늘의 국민들도 무엇인가 때문에 현란한 말과 그럴듯한 제스처 뒤에
숨겨진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 ‘무엇인가’를 무엇이라 구체적으로 단언해서 말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현실,
사실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지의 부족이나, 균형 잡힌 사고력 부재가 줄 그은 호박을 수박으로
보는 우를 범하게 한 것이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제 앞에 큰 감 놓으려는 욕심이 과해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古事)까지 불러와 현실이 되게 한 것일 게다. 

내로남불, 자화자찬(네 탓이고 내 덕이다), 진영논리…
국민개개인도 망치고 나라도 망치는 요인들로, 여와 야,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양자에 모두 적용되는 것들이다. 어느 쪽이 조금이라도 더 심한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인격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인격이 있어서이다. 내로남불, 자화자찬,
진영논리… 이런 것들에 침윤되면 될수록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라고 다르지 않다. 이런 것들에 심하게 침윤되었다면 나는 사람은 사람이로되 사람 같지 않은 사람임이 틀림없다.

특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고, 기독교인은 사랑의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중핵은 마태복음 25장에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이 말씀을 가슴의 돌비에 깊숙이 새겨 놓고 살아야 할 것이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요…(마25:40)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25:45)>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고 하지 아니한 것이 곧 자기에게 하고 하지 아니한 것이라며 예수께서 사회적 약자를 자신과 동일시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인격을 가진 인격체로서의 사람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이다. 그러니 사람답게,
 기독인답게 살아야함은 물론이다. 선거도 그렇게 치러야함도 물론이다.


행복가득 24-04-20 18:56
 
우리는 주권을 행사했습니다,
선거의 결과는 나왔고 결과에 따라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함께 나가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일하는 국회의원들이 되십시오
윤지 24-04-22 21:00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시민 의식을 가지고 투표를 꼭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선된 정치인들이 국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