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2-29 16:11
사람들이 다녀 난 길과 예수의 좁은 길 ― 위법을 준법하자는 것은 악법이 아니다 ―
 글쓴이 : 지은
조회 : 503  

19일차 단식 도중 건강 악화로 병원에 긴급 후송됐던 이재명 민주당대표를 보고
‘수사 받던 피의자가 단식해서 자해한다고 해서 사법시스템이 정지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안 된다’는 명언을 남긴 한동훈 전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유력하다는
설이 나온 가운데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자 이번에는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면 길이 되는 거죠’라고
또 하나의 명언을 남겼다.

한동훈 참 똑똑한 사람이다. 어디에서 누구에게가 됐건 밀리는 법이 없다.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 국회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과도 맞서는 것을 서슴지 않을 뿐 아니라 거기에서도 결코 밀리는 일이 없다.
국회에서 국회의원과 맞서는 것은 국민과 맞서는 것과 다름이 없고, 국회의원을 이기겼다는
것은 국민을 이기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그러니 비선출직 공무원들은
그게 아무리 고위직이라 해도, 뿐만 아니라 최고위 선출직인 대통령까지도 국회에서는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자기네에게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
국회에 출석한 인사들을 향해 큰소리를 치고 윽박지르는 것이 보편화되다시피 된 게 현실이다
보니 그들 앞에서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국민들이 오히려 마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매사안마다 빠짐없이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각을 세우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른 것을 지적하는 의원에게 지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다.
나는 앞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인 전법무부장관을 보고 똑똑하다고 했는데,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뜻이지,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그에 대해 말한 것들은 사실을 말하면 똑똑한 것이 아니라 버릇없는 것이고 싸가지와 관련된 것이다.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면 길이 되는 거죠.
”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한 이 말은 그가 처음 한 것은 아니다. “원래 땅위(地上)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중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사상가로 근·현대 중문학을 대표하는 루쉰(魯迅, 1881-1936)이 자기의 단편소설
<고향>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루쉰의 이 말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한 말과는 의미에 차이가 좀 있다. 루쉰의 이 말은
다른 말에 이어서 한 것인데, 그것을 옮겨 보면 이렇다.

―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원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그렇다. 희망은 본래부터,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지만, 거기에서도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는 것이고, 희망을 가질만한 상황에서도 희망 아닌 절망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희망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본래 없던 길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면 길이 생기는 것처럼 희망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그 같은 말로 응수한 것이다. 내가 비대위원장 업무를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할 것이고, 그러면 그것이 부족한 경험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인데, 그까짓 경험부족이 무슨 대수냐는 함의를 지닌 말이다. 자신만만하고
기백이 넘치는 말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국민을 무시한 말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똑똑한 인성과도 맥을 같이 한 말이다.

말은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한 것인가를 알면 그 진의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맥락을 따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전술한 대로이다.
원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운운한 말을 남긴 루쉰은, 할아버지가 중앙정부 관료였음으로
유년기를 비교적 유복하게 지냈다. 아버지는 병약하여 장기간 병상에 누워 있다가 그가 16세 때 결국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할아버지가 가정을 꾸려가는 기둥이었는데, 그 할아버지는 아버지
생전인 그가 13세 때 예기치 못한 일로 체포되어 투옥되는 사건이 벌어져 심한 곤궁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런 그는 18세 때 어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학비를 마련하여 난징으로 떠났다.
육군학교 부설 노광학당(路鑛學堂)에서 수학한 그는 22세 때 일본으로의 유학길에 오른다.
처음 2년간은 중국유학생을 위해 세운 도쿄(東京) 홍문학원(弘文學院)에서 일본어와 교양을
배우고, 24세 때 동북지방으로 옮겨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한다. 일본의 유신(明治維新)이 서양의학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의학의 길도 2년이 채 못 되어 접게 된다. 필름으로 본 뉴스에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뉴스에는 중국인 포로가 일본군에게 처형당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는데,
같은 중국인 동포가 그것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만보고 있는 것이었다. 루쉰은 거기에서
심한 충격과 함께 중국인은 구경꾼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중국인들에게는 동족의 불행이 타산지석이요 강 건너 불구경인 셈이었던 것이다. 그는 거기에서 자기 민족의 이 같은 의식을 바꾸기에는 몸을 고치는 의사보다 작가가 낫겠다는 생각으로 인생목표를 바꾸게 된다.

루쉰의 그 ‘길’ 운운한 말은 전술한 대로 그의 작품 <고향>에 나오는 문장인데, <고향>은 그의
 유복했던 어린 시절 자기 집안 소작농의 아들이자 자기와 같이 뛰놀던 동네 형 룬투를 모델로 한 소설이라고 한다. 그는 성인이 된 뒤 고향에 갔다가 룬투를 만났는데,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어린 시절의 그 생기발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훗날, 그때 온몸으로 느낀 아픔이 기억으로 남아 우리의 후손들은 그런 일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향>의 말미에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원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는 명언으로 남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라고 말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말한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면 길이 되는‘ 그런 길과는 다른 길이다.
도심의 공원 같은 데에는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와 같은 팻말까지 세워 놓았는데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 난 길이 허다하다. 나서는 안 될 길이다. 쉽고 편하지만 가서는 안 될 못된 길이다. 좁고 협착하여 찾는 사람이 적을지라도 바른길이라면 그길로 가는 것이 옳다. 가서는 안 되는 길을 바른길이라고 우겨 밀리지 않는 것은 똑똑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 되었다. 정상을 비정상화하는 선봉이요,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의인은 없다. 그런가 하면 절대 악인도 없다. 조금이라도 더 옳으면 옳은 사람이라 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그르면 그른 사람이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조금씩이라도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놈이 그놈이라 해서는 안 되고, 오십 보 백 보라 해서도 안 된다.
오십 보는 백 보의 절반밖에 안 된다.

끝으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방점을 크게 찍어 강조한, ‘악법’에 대한 나의 견해[私見]로 결어를 대신하고자 한다.
(거듭 말하지만) 위법을 준법하자는 것은 악법이 아니다. 내로남불이 무엇인지 아는가. 같은 법인데도 네가 하면 악법이고 내가 하면 준법이라 할 때와 같은 경우에 쓰는 말이다. 그런 것이 악법이다.
‘악법’을 말하려면 그는 그러기 전에 폰의 숨겨 둔 비번부터 밝히는 것이 순서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큰소리도 치지 말아야 한다. 법꾸라지라는 말이 왜 생겼는가. 그 폰에 ‘악법’은 없고 ‘준법’만 들어 있다면 못 밝힐 이유가 무엇인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지켜 그의 길로 가기 위해선가. 그렇다면 정말정말 좋은 일이다. 진짜진짜 좋겠다.


대허 24-01-30 15:45
 
법의 잣대가 균형을 잃지 말고 모두에게나 공평했으면 좋겠습니다. 공감되는 내용 감사합니다.
윤지 24-02-23 15:39
 
법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으로 국가 및 공공 기관이 제정한 법률, 명령, 규칙, 조례 입니다.
누구나 공평하게 적용되야 하는데 가장 잘 지켜져야 하는 정치계에서 공평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