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6-12 13:00
제눈의 들보보다 커 보이는 남의 눈의 티 - 충남대 명예교수 및 우리집공동체 원로목사 임종석
 글쓴이 : 별빛
조회 : 2,772  
제 눈의 들보보다 커 보이는 남의 눈의 티
― 옳은 일이지만 네가 했으니 나쁘다 ―

개미 같은 미물만도 못한 인간이라?
며칠 전 필자와 동년배의 목사님 두 분과 자리를 같이 했다. 같은 나이의 목사 셋이 만난 것이다. 식사를 하고 커피숍이라는 데에 가서 차를 마셨다.
어쩌다 보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자 목사님 한 분이 ‘개미 같은 미물도 비가 오려면 그것을 미리 알고 줄을 지어 안전한 곳으로 피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방송을 통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란다고 그대로 있다가 죽다니 그런 바보들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을 했다. 그리고 ‘놀러가다가 죽은 것을 가지고 왜 이렇게 호들갑들을 떠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고 한 한기총의 부회장 조광작 목사의 말을 연상시키는 말이었다.
필자는 당연히 반박했다. ‘천재지변에 대해 미리 감지하는 능력 면에서는 곤충을 포함한 동물이 인간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뛰어나다. 그러니 그렇게 개미와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옳은 것이 못된다. 그리고 누가 됐건 배를 타면 선장의 말을 듣고, 비행기를 타면 기장의 말을 들어야 한다. 병원에 가면 의사의 말을 들어야 하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그러지 못한 데에서 생긴 것이다’라는 의미의 말로 반박했다.
화제는 정치적인 것으로 옮겨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목사님께서, ‘지금처럼 나라가 어수선할 땐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분들이 대통령을 해야 한다’는 의미의 말을 했다. 두 전직 대통령처럼 힘으로 밀어붙이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당연히 아니라 했다. ‘대학을 군홧발로 짓밟은 게 누구에 의한 것이며, 정권유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중앙정보부가 끌어다 그 잔인한 고문을 하게 한 것이 누구냐. 끌려갈 것이 두려워 대통령의 성자(姓字) 하나도 소리로 하여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젊은 시절을 살았던 걸 잊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그리고 정권유지를 위한 5.18 광주시민학살은 누구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숫하게 일어났던 의문사에 대해서도 되돌아보라.’ 이런 내용으로 항변했다.

남의 논의 물꼬 막고 제 논에 물대기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들께선 두 분 목사님은 보수성향의 분이시고 필자는 진보성향의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보수와 진보는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치‧경제‧문화‧사회 등의 제반 부문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데, 그때, 그리하는 방법론적인 면이 보수와 진보로 나누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보수와 진보는 그리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기존의 전통 쪽 좀 더 가까이에 방점이 찍히면 보수이고, 변화 쪽 좀 더 가까이에 방점이 찍히면 진보이니 말이다.
보수 쪽에서는 자기네 보수가 안정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데에 반해 진보는 급진적 변화를 꾀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하고, 진보 쪽에서는 자기네가 올바른 방법의 합리성을 추구하나 보수는 방법이야 어떠하든 효율만을 꾀하려 하니 문제가 많다고 한다. 양자의 견해 모두에 일리야 있겠지만 아전인수식이라 해야 맞는 말이 될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보수는 성장을 중시하고 진보는 분배를 중시한다고 하는 것을 보수와 진보의 차이로 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이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다 해도 보수진영의 사람들이 진보 쪽 사람들을 가리켜 친북적이라고 몰아세우거나,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보수 쪽 사람들을 가리켜 친미주의자들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균형이 잘 잡힌 사고(思考)로 지속적인 삶을 영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각고의 노력으로 인격을 갈고 닦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인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필자 같은 사람은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지 않으면 진영논리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지라 필자는 시사성이 있는 설교준비를 하거나 글을 쓸 때면 조심에 조심을 거듭한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게 해 주시라고 기도드린 뒤 책상 앞에 앉는다. 그러나 소인배일수록 아전인수식의 생각을 하기 쉬운 게 사실이다 보니 그릇이 작은 필자는 팔이 안으로 굽는 일도 없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오물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인격
글을 쓸 때면 필자는 그것이 어떠한 것이 됐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메일 하나, 문자 하나를 보낼 때도 마찬가지다. 문재(文才)는 없지만, 짧은 센텐스 하나도 궁리하고 또 궁리하여 쓴다. 말이 그렇듯이 글은 자신의 인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상의 댓글들을 보다 보면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것이 많다. 문장이 초등학교 2.3학년이 썼어도 이보다는 낫겠다 싶을 정도로 엉망이어서 외국어에 약한 사람이 원서를 읽는 것처럼 신경을 곤두세워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댓글이라고 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문장력을 탓하자는 건 아니다. 마치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낙서처럼 나오는 코를 그대로 흘리듯 그저 쓴 무신경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따름이다. 자기의 생각과 다른 내용의 글에는 저속한 욕설을 댓글로 다는 사람도 있다. 오물을 질질 흘리고 다니며 이것이 나의 인격이라고 하는 사람을 연상케 하는 사람들이나 씀직한 것들이다. 악의에 찬 댓글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도구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만이라도 하고 썼으면 하는 건 필자만의 견해일까 싶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택하는 것이 최선
문화에도 별 희안한 것이 다 있는데, 패거리문화라는 것이 그것이다.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일이면 그른 것도 옳은 것이 되고, 상대방이 속한 집단의 일이면 옳은 것도 그른 것이 된다. 내가 했어도 잘못되었으면 잘못되었다 해야 하고, 나와 사이가 나쁜 네가 했어도 잘한 것은 잘했다 해야 하는데 말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 했는데, 인간 세상에는 절대적인 의인도 없고 절대적인 악인도 없다. 옳고 그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속담이 있는데 옳은 말이다. 그렇다고 그른 것을 옳다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옳은 것을 그르다 해서도 안 된다. 옳은 것은 옳다 해야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해야 한다. 내가 했어도 그른 것은 그르다 해야 하고, 남이 했어도 옳은 것은 옳다 해야 한다. 내가 해서 좋은 것은 남이 해도 좋아야 하고, 남이 해서 나쁜 것은 내가 해도 나빠야 한다.
양자 간의 다툼에 어느 한 쪽이 100% 잘못하거나 반대로 100% 잘한 경우는 흔치 않다. 대개는 잘잘못이 6대4이거나 7대3, 아니면 차이가 커 봤자 8대2가 보통이다. 그러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양비론(兩非論)은 안 된다. 단 1%라 할지라도 더 잘했으면 그만큼 잘한 것이고 잘못했으면 그만큼 잘못한 것이다. 1%가 100이 모이면 100%가 된다. 예를 들어 선거에서 50% 잘한 사람이 아닌 51% 잘한 사람을 선택하면 나라와 사회가 1%만큼은 좋아진다. 우리는 그 1%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어도 덜 나는 사람은 있다
나라나 지자체 또는 공기업이나 개인회사의 어디에서가 됐건 사람을 뽑을 때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며 좋은 사람 찾기를 포기해선 안 된다.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일을 포기하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다. 절망과 해야 할 일의 포기는 불신앙의 산물이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택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오십 보 백 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오십’은 ‘백’의 절반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이 사람의 정신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균형 잡힌 사고체계(思考體系)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크리스천들은 그것을 길러 신앙인으로서의 인격을 갖추어 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노력해야 한다. 신앙과 인격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 가며 하나가 될 때 그 신앙은 깊은 맛을 내며 그 인격은 빛을 발하게 된다. 양자 사이의 괴리가 큰 사람은 이중인격자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7:3)

가츠 16-06-12 19:32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어도 덜 나는 사람은 있다" 저는 이 말이...
사람이 먼지나는 사람이 없듯이 서로 예수님 안에서 보듬어주고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저도 명심하겠습니다. 아멘!
지뇽 16-06-12 22:34
 
단 1%라 할지라도 더 잘했으면 그만큼 잘한 것이고 잘못했으면 그만큼 잘못한 것이다.
1%가 100이 모이면 100%가 된다. 너무나 공감되는 말이에요 ~~
그 1%를 소중히 여기도록 하겠습니다 !!!!!
홍석태 16-06-13 00:05
 
하나님의 말씀을 토속신앙과 혼합하여 잘못된 말씀을 받아들이는 양들에게 주님의 자비하심이 미치길 기도합니다.
공주 16-06-13 09:36
 
'털어 먼지 안나는 사람이 없어도 ....덜 나는 사람음 있다 "
항상 먼지가 덜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적의삶 16-06-13 09:55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박로순 16-06-13 09:57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이지만
신앙인으로서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하는가를
배우고 갑니다~
온새미로 16-06-13 09:59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엄격하던
우리 자신을 반성하게 해줍니다.
균형 잡힌 사고체계가 신앙인으로서의 인격에 바탕이
되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깨달음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명탐정레옹 16-06-13 14:05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소피아 16-06-13 19:53
 
신앙과 인격은 별개의 것이 아니란 말,  신앙인으로서의 성숙한 인격을 갖출 수 있도록 기도하며 노력해야 겠습니다.
봄날 16-06-14 08:31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규연애비 16-06-14 11:39
 
털어서 먼지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치만 그게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신앙인으로서는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빗방울 16-06-14 23:20
 
남의 허물만 보고 탓하기보다는 나의 잘못을 먼저 깨달는 제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하닷사 16-06-15 21:42
 
남이 했어도 옳은 것은 옳다여기고 내가해서 좋은 것은 남이해도 좋다하며 1%를 소중히 여기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며 좋은글 감사합니다.
유병주 16-06-16 22:31
 
서로가 서로를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며 서로에게 배려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행복가득 16-06-16 22:43
 
포용하는 마음을 갖지않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남의 티만 보이고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인생이 될진대 나를 돌아보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인생이 되어야겠습니다.
안타레스 16-07-11 16:27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듯이 "내가 하면 그럴수도 있는 일이고, 남이 하면 죽어도 않된다"는 그런식이 이기주의는 사실 나의 삶에 너무나도 깊게 들어와 있습니다.
운전중 신호중 대기가 길어지면 슬며시 출발선을 넘기도 하는 나이기에, 조금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해야만/지켜야만 하는 것들과 해서는 않될 것들을 남과 나를 구분없이 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지키지 못하는 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