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3-03 13:41
성경은 하나님이다
 글쓴이 : 장지은
조회 : 519  
<이 칼럼은 저에겐 특별한 글입니다. 저의 신앙고백으로 이렇게 살아가게 해 주시라고 매일매일 기도드리고 있는 내용을 칼럼형식으로 쓴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입니다.
성경이 없다면 하나님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맹인에게 밀레의 만종이 무슨 소용이며, 농아에게 헨델의 메시아가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성경이 없다면 하나님도 그와 다를 게 없는 것이지요.
물론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롬1:20)라는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은 그분이 만드신 천지만물에 그분의 능력과 신성이 나타나 있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그것만으로는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천지만물 하나하나의 모두가 질서정연하여 우연히 그리 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고,
무엇인가에 의해 그리되었다고 하는 것은 선입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엇인가가 창조주인 것이지요.
그러나 이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피조물에서 창조주까지는 알 수 있지만, 그 창조주가 하나님이라는 사실까지는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천지만물에서 그것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찾을 수까지는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천지만물에 드러난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에서 경외감을 느껴 자기들 멋대로 창조주가 아닌 자기들 멋대로의 신을 만들어 냈습니다.
말하자면 미신인 것이지요.
인간들이 진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성경 66권, 구약 39권 신약 27권의
성경 66권뿐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사실(事實·史實)로 믿는 것이,
성경의 하나님을 그대로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성경 66권 중 그 첫 번째 책의 맨 처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를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를 믿지 않으며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가짜 신앙입니다.
하님님께서 ‘빛이 있으라’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천지만물은 모두가 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은 것입니다. 이를 그대로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이뿐 아니라 성경의 모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믿는 것입니다.
그건 맹신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맹신이 맞습니다. 기독교는 맹신하는 종교입니다.
성경을 맹신하고 하나님을 맹신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을 하나님 말씀으로 알며,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알고 맹신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믿냐고요? 이해하려 하지 마시고 무조건 믿으세요. 좀 더 깊이 알려고 하다가 막히면 그대로 내버려두고 그냥 믿으세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머리로 생각하여 이해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벧후3:16) 했습니다.
우후죽순처럼 숫하게 생겨난 이단의 교주들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성경을 의도적으로 곡해한 자들이고, 또 하나는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이단을 만들어낸 자들입니다. 사단의 하수인들인 것이지요.

성경은 두뇌로 풀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의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내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라고 감격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물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로 된 것”(딤후3:16)이므로 읽고 듣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믿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읽을 때,
들을 때 성령께서 함께 해 주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만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성령의 도우심을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도입니다. 진정한 기도입니다.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며 성경을 읽고 들을 때, 그리고 성경 공부를 하거나 연구할 때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게 되고 따라서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됩니다.
바로 알되 머리로 지식으로서 아는 것이 아니라, 온몸과 온 마음으로 체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피부와 마음으로 느껴 압니다.
그것은 많은 신학관련 전공 교수들과 목사들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라고 다 신앙이 바르고 깊은 것은 아닙니다.
신학대학교의 분쟁과 반목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고,
일부 목사들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목사들은 목사이니까 당연히 자기가
일반 성도들보다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아니지요.
교인 중에도 목사보다 신앙이 좋은 성도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떻든 그리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에게 있어 말씀이 말씀되고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천지를 지으실 때의 그 역동적인 상태로 지금도 살아 계셔서 당신께서 지으신 천지만물을 주재하고 계십니다. 천체의 움직임으로부터 바람에 땅 위를 나뒹구는 낙엽 하나까지, 인간의 생사화복 생로병사의 모든 것, 머리털 하나, 다 이어 펼쳐 놓으면 지구를 두 바퀴 반이나 돌릴 수 있는 길이라는 실핏줄(毛細血管)의 한 가닥에 세포 하나하나,
체내의 바이러스 하나, 병균 하나까지 다 아시고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당신의 의도대로 디테일하게 관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천지를 동식물을 위시한 모든 생물체까지 다 지의시고 나신 후 맨 마지막에 인간을 지으시고,
 천지간의 모든 환경을 낙원으로 하여 삶의 터전으로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
정복하라,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최초의 인간이 불순종의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주셨던
낙원을 거둬들였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낙원을 잃은 것(실낙원)이지요.
낙원이 고해(苦海)가 된 것입니다.
죄를 범하여 타락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실낙원뿐이 아닙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니 영멸, 그러니까 지옥 불에 떨어질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런 처지의 인간들을 구해 내시려고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아들(人子)로 하여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말하자면 대국의 왕이 거지 무리를 구하려고 오직 하나뿐인 왕자,
 왕세자를 거지로 만들어 그들 무리의 일원이 되게 한 것과 비슷한 것이지요.
비교도 되지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요.
그것도 세상 죄를 다 지고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인 십자가형으로 죽게 했으니
그게 우리를 향하신 그분 하나님 여호와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의 은혜로 지옥형벌을 벗어버리고 천국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것입니다. 아니 그분의 종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종은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인이 있을 뿐입니다.
좋은 종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인격도 없고 자기 생각 같은 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그게 좋은 종입니다. 시키지 않아도 주인의 생각(뜻)을
 미리 알고 그에 따라 일하며 살아가면 더더욱 좋은 종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님이신 하나님,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주인과는 다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안에 모신다는 것이 다릅니다. 우리는 자기 안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종으로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담의 후예로서의, 죄성(罪性)의 인간적인
 모든 것, 그러니까 육적인 것, 세상적인 것, 못된 자아 즉 성질·성격·성품,
구습·구태 같은 것들을 다 죽여야 합니다. 믿음 아닌 나의 모든 것을 다 죽여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여 주(인) 하나님만을 죽도록 사랑하여 섬기는 것이 우리 크리스천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
(롬14:8)는 사람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말씀은 죽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살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다른 것 말고 주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사는 길을 자존심 상할 일이 가로막으면 그것을 버리며 사는 것입니다.
물질적 손실이 가로막으면 피하지 않고 손해를 보며 사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 됐건,
아무리 큰 불이익이라 할지라도 가로막으면 피하지 않고 당하며 사는 것입니다.
죽음이 그리하면 그것도 피하지 않고 죽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에게는 주를 위해 죽을 일을 강요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무엇인가의 손해가 있을 뿐이지요.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마5:39)겠다는
각오면 됩니다. 상인이라면 올바른 상거래로 돈을 벌면 되고,
직장인이라면 성실히 일을 하면 됩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마5:44) 하셨는데, 그러네요.
이는 마음의 각오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닐 것 같네요.

그러나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하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는 그리한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분이니까요.
주님만을 사랑으로 섬기는 데에 어려운 일이 어찌 원수를 사랑하는 일뿐이겠습니까.
많고 많지요.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해 주시면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고요.
저는 지금 기독교 신앙에 관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그건 가능치 않는 일이라고요?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할 수 없는 일을 하라 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불가능한 일을 해내라 한다면 하나님이 아니지요.
그리 하겠다 각오하고 결단만 내린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만을 하라 하십니다.
특출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특출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모든 사람에게 하라 한다면 그 또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물론 각오하고 결단을 내리기까지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다 됩니다. 기도하면 말씀이 말씀 되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십니다.
(기도에 관해선 후일 비교적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앞에서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사람이 크리스천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바울은 이어 말합니다.
성삼위 하나님을 자신의 안에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뜻에 따라 종으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지요. 바울은 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고도
말하는데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곧 하나님의 마음을 나의 안에 품는 것이 바로
성삼위 하나님을 나의 안에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이 또한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하신 말씀인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안에 성삼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종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숨 쉬며 살아가는 일상의 삶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향기로
기쁘게 받으시는 거룩한 산제사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영적 예배입니다.

진짜 예배는 우리 일상의 생활로 드리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 것뿐 아니라 취미생활을 하는 것, 쉬고 잠자는 것까지도, 그러니까 삶 전체가 예배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랑, 그렇습니다. 하나님 마음은 사랑을 중심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의 그 사랑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향기로 기쁘게 받으시는 거룩한 산제사라는 말이지요.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가장 영화로우시게 하는 삶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가장 큰 축복의 삶이라는 말도 됩니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서도 나중에 좀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세상의 것과 같지 않습니다. 언제까지나 갈함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행복입니다. 도살되기 위해 길러지고 있는 살진 돼지와 같은 그런 행복이 아닙니다.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게 하는, 모두가 다 같이 행복하게 하는 그런 행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산성이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방패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시고,
 안식처가 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엄부로서의 아버지가 아니라 자애로우신 아버지의 품으로 안아 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격도 생각도 다 내려놓고 내 안의 하나님의 그것을 나의 것으로 한다면
그보다 고귀한 인격과 생각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그것이 손가락질 받던 나를 이웃이 추앙하는 나로 만들 것입니다.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하는 나로 만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다 그런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멘.

영미 22-03-06 22:13
 
읽으면 읽을수록 옳은말과 좋은 말들로만 쓰여져 있는 성경책,
아주 오래전 쓰여져 내려왔다고는 하지만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서도 결코 걷돌지 않고 접목되어지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고 대단하다 생각합니다.
성경책에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만 살아간다면
우리가 곧 예수님이 아닐까 합니다.
그만큼 글을 이해하고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겠지요.
틈나는대로 읽어보고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백선희 22-03-28 21:29
 
성경은 구시대 적인것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나침반 같은 것 같습니다. 몇 천년전에 쓰여진것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성경을 잘 읽고 바른 길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피아 22-04-01 16:23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크리스천처럼  저의 일상과 삶 전체가 예배가 되어지길 원합니다.
이찬양 22-05-04 19:38
 
성경은 우리가 어떤길로 가야하는지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성경을 잘 읽고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노력하겠습니다.
두필님 22-05-05 21:40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있어 하나님을 만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별 22-06-16 10:02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생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이 성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힘든 일이 있더라도 성경책을 통해 지혜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훈훈 22-06-23 15:18
 
성경의 있는 말씀처럼 하님께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