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1-04 11:27
D.L. 무디와 하나님의 사랑
 글쓴이 : 우리집
조회 : 513  

D.L. 무디와 하나님의 사랑



우연처럼 진행되어져 간 필연


‘세계적인 부흥사’ ‘대중전도의 아버지’ 이는 D.L.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1899)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입니다. 그가 자신의 생애를 통해 2억이라는 천문학적 수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도 있고, 100만 명 이상을 전도했다는 것이 학자들 간에 거의 정설처럼 된 인물이니 이 같은 수식어가 오히려 무색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는 1837년 2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노스필드의 보잘 것 없는 농촌에서 태어났고, 거기에서 자랐습니다. 거기에다가 가정환경은 비참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가난한 소작농이자 석수장이의 9남매 자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아들이었는데, 아버지는 파산 뒤 술에 의지하여 살다가 그가 네 살 때 결국 세상을 떴습니다. 만으로 열 살도 채 되기도 전에 하루 1센트의 품삯을 위해 남의 소에게 풀을 뜯기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신앙으로 길렀고, 그 또한 다섯 살 때 세례를 받았으나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믿음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1854년 열일곱 살 때 집을 나와 보스톤으로 갔습니다. 삼촌의 구둣방에서 구두수선 견습공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교회의 주일학교 출석이 조건이었습니다.

집을 나오기 전에도 교회에 다녔으니 삼촌의 조건을 따르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으나 믿음은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관심은 오로지 돈을 버는 일에 모아져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교회에 나간 지 1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니 그것은 정확히 1855년 4월 21일이었습니다.
그의 주일학교 선생 에드워드 킴볼이 구둣방으로 찾아왔습니다. 통상적인 인사를 나눈 뒤 킴볼이 물었습니다. 

“무디, 자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체험이 있는가?”

 킴볼이 찾아온 목적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글쎄요, 저는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고,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니, 내 말은 말이야, 자네 자신이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적이 있느냐 하는 것일세. 나는 자네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네. 지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겠나. 하나님께서는 자네를 무척 사랑하고 계시네.”

킴복의 말은 계속되었고, 그러는 사이 무디의 습관적 믿음에 훈훈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무디의 눈에서도 킴볼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무디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훗날 그 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 사함 받고 맞은 아침 밖으로 나가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태양이 그토록 사랑스럽게 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지저기는 새소리도 내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져 보였습니다.”

사실을 말하면 그게 누가 됐건 자기 한 사람이 거듭나 새 사람이 되었다 해서 다른 것도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달리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연도 그대로이고 사람들도 다 그대로입니다. 자신이 새 사람이 되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고 미웠던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는 것이지요.
무디는 킴볼 선생을 만나 거듭남을 체험한 뒤 넘치는 기쁨으로 어머니께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기뻐해 주세요. 1837년 2월 5일은 제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제 생일이잖아요. 그런데 18년이 지난 1855년 4월 21일 오늘은 제 영혼이 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의 생일입니다.”
구둣방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삼촌이 제시한 주일학교 출석, 킴볼 선생과의 만남, 모두가 하나님의 빈틈없는 계획의 일환이었던 것입니다.


가스등 불꽃으로 마음의 돌비에 새긴 ‘GOD IS LOVE’

그렇게 거듭남을 체험하고 1년쯤 후, 그러니까 1856년, 무디는 시카고로 옮겨 가 개인 사업을 하면서 한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몇 명 안 되던 학생들이 늘어나가 시작했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무디는 그들 개개인이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 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시기로 작정하였습니다.

1858년, 술집을 개조하여 만든 집회소에서 설교하였는데, 모이는 사람들은 주로 빈민층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교회도 짓게 되어 설교자로 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큰돈을 벌겠다는 야심찬 꿈도 내려놓았습니다. 온전한 헌신의 시작이었습니다. 자기는 없고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그는 교파도 가리지 않고 어떠한 교리에도 얽매이는 일이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전했습니다. 그러며 1862년, 영국 태생 유그노 에마 레벨과 결혼하였습니다. 겸손과 교양, 센스로 인격이 다듬어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861년 4월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무디는 노예제도 폐지를 지지하며 전쟁터로 달려갔습니다. 군인교회에서 1천5백여 회의 집회를 가졌습니다. 나중에는 자리가 모자라 연병장에서 집회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무디가 남달리 출중한 데가 있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사실을 말하면 오히려 남만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정규 교육이라고는 고작 초등학교 5년 과정을 마친 것이 전부였고, 모국어인 영어조차도 철자법을 몰라 문법에 맞는 편지 한 장 제대로 쓸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설교 원고 또한 엉망이었습니다. 따라서 설교 자체도 무식한 티가 났습니다. 외모도 볼품이 없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흠모할만한 것이라고는 없어 보였습니다.
단 하나 복음 전파에 대한 열망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헌신적이 아니라 헌신으로 전했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신의 전존재를 다 바쳐 전했습니다.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였습니다. 독생자를 주실 만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한 그 사랑으로였습니다.

무디는 거듭남의 체험 후 날이면 날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시카고로 옮긴 뒤로는 그게 누가 됐건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얼마나 열심히 전했던지 ‘미친 무디’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헌신은 사랑 없인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사랑 없이도 할 수 있는 헌신이 있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 했는데 왜 아니겠습니까.

무디는 시카고에 교회를 세우자 하나님의 그 사랑을 가르치려고, 아니 체득케 하려고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설교로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할 수 없다면 ‘불’로라도, 성령의 불이 아니라 실제의 불로라도 사람들의 마음의 돌비에 새기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강대 위에 가스등불꽃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GOD IS LOVE)”라는 말씀의 글자를 만들어 걸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불량자 한 사람이 교회 앞을 지나가다가 그 가스등불빛 문장을 보았습니다. 불쾌한 표정으로 뭐라 중얼거리며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불빛 문장이 자기를 가로막아 서는 것 같았습니다. 고개를 흔들어 떨쳐버리려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발길을 돌려 교회로 갔습니다. 집회 중이어서 설교가 이어졌으나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이 글귀만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눈을 감아도 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다들 돌아간 뒤에도 혼자 남아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리하고 있었습니다.

무디는 가만히 다가가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랑의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복음의 빛, 사랑의 빛이 부드럽게 그의 가슴속으로 비쳐들었습니다. 그는 기쁨을 안고 돌아갔습니다.

무디는 입만으로 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가스등불빛으로 말씀을 쓰든 뭐든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물론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말씀 없는 복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 노라 하는 성서학자들 못지않은 성서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디는 미국에서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을 몇 번인가 오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미국에서보다 오히려 영국에서 복음전도의 명기(名器)는 더욱 크게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1867년 서른 살 때 처음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 죠지 뮬러(George Muller, 1805-1898)를 만나 크게 영향을 받고 복음 전도의 근육을 더욱 단단하게 다졌습니다. 명기는 어쩌다 이 세상에 나오는 법이 없는 것이지요. 명장이 없으면 명기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명기로 만든 명장이었던 것입니다.

1872년부터 1875년까지 사이에는 영국에서 총 250여만 명이 집회에 참석했는데, 한 자리에서 수 만 명이 복음을 받아들일 정도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에는 시카고 교회 시절에 만난 아름다운 목소리의 찬양 가수 아이라 생키(Ira David Sankey, 1840-1908)의 역할도 컸지요. 스펄전, 뮬러, 생키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하에 이뤄진 필연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비범하게 살다 간 평범한 사람 무디

복음을 전하던 무디는 병을 얻었습니다. 인간의 육신이란 무쇠와는 다른 것이지요. 예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다르진 않습니다. 1899년 11월 캔자스 시티에서 복음을 전하던 중 병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 노스필드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달인 12월 22일 금요일에 D.L. 무디는 이 세상에서의 할 일을 마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날 아침 그의 아들 윌이 복도 맞은편 방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땅이 사라지네 … 하늘이 열리고 있어, 나를 위해…”
윌이 아버지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윌, 정말 아름답구나. … 이건 꿈이 아니야 … 황홀하다 … 이게 죽음이라니 … 하나님이 부르시고 있어 … 나는 가야 해”

드와이트 리먼 무디 그는 이렇게 62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하나님의 나라로 갔습니다. 길지 않은 생애를 사랑이라는 불꽃으로 아름답게 태우고 갔습니다. 20세기를 며칠 앞두고 갔습니다.
무디가 생전에 한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가 무디가 죽었다는 사실을 신문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마십시오. 그 순간 나는 지금보다 더욱더 생생한 모습으로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네요. 정말 그러네요. 그가 가고 한 세기가 훨씬 더 지났는데도 우리의 가슴속에 이렇듯 생생하게 살아있으니 말입니다.

그는 육신적 손익 같은 건 염두에도 두지 않고 하나님께만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목사안수 조차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무디, 아니면 부흥사 무디로 불리는 것으로 족하게 생각했습니다. 금전상으로도 털끝만한 오류조자 남기는 일이 없었습니다. 처자식에게 남긴 것은 하나님의 사랑뿐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간 그가 전한 복음의 씨는 지금 이 지구상에 얼마나 널리, 그리고 많이 퍼져 있을까요. 혹 나도 그 씨앗 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전인숙 22-01-12 00:10
 
제가 이 자리, 이 시간, 이 곳에 있는 것도 하나님의 빈틈없는 계획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맡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윤지 22-01-19 11:03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에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 넘칠 것입니다
백선희 22-01-22 18:09
 
글을 읽으며 제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알게된 시간이 언제인지 다시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것 같습니다.  저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길 기도하겠습니다.
훈훈 22-02-10 10:20
 
하나님의 자녀로써 저도 무디처럼 그냥 평범한 한 사람으로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소피아 22-03-04 15:14
 
무디의 거듭남이 하나님의 빈틈없는 계획의 일환이었던 것처럼  매 순간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믿고 그 사랑을 느끼고 전하고 싶습니다.
두필님 22-05-05 21:57
 
저또한 하나님의 올바른 씨앗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