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2-13 16:28
목사는 교인들과 하나님 사이의 중간 계층인가
 글쓴이 : 장지은
조회 : 553  
‘만인제사장’ 아닌 ‘만인의 제사장’이 된 목사님들

성도들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것을 크리스천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소위 ‘만인제사장’이라는 것이지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2:9)라는 말씀만 봐도 ‘만인’이, 그러니까 믿는 사람 모두가 ‘제사장’임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도 ‘왕 같은 제사장’인 것이지요. 그러니 이를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사님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아직까지 목사님들 가운데는 입으론 그리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이 말씀에서 말하는 ‘너희’가 목사만을 가리키는 것이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배에서 축도를 ‘…지어다’로 마치는 목사님들이 이제껏 남아 있는 것만 봐도 그렇지요. 
‘축도(祝禱, benediction)’가 무엇입니까? ‘축복기도’를 줄여 한 말로
‘축복하는 기도’를 의미하지 않습니까.
그런 ‘기도’를 ‘…지어다’로 마치다니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지어다’가 ‘‘마땅히 그렇게 하여라’라는 의미인데 말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그런 축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마땅히 그렇게 하여라’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그게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에게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언어도단이지요. 좀 거시기한 말로 싸가지가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없는 말입니다.
<교회용어사전>은 ‘축도’에 대해 ‘목사가 예배 끝 순서에 두 손을 높이 들어 하나님을 대표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회중을 향해 하나님의 은총과 복을 선포하는
기도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정말이지 기가 막힐 일입니다. 인간 중 누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대표하거나
대신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학교에서 반장이 반을 대표하고,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하듯
목사가 성삼위 하나님을 대표한다니 말이나 될 법한 일이냐는 말입니다.
만인이 제사장이라는 사실까지 깡그리 무시하고 짓밟는 행위입니다.
그런데다가 ‘축도’가 ‘기도’라고까지 확실하게 밝히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이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것도 ‘선포하는 기도’라니 언어도단도 그런 언어도단이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이 ’선포‘인데, 누구인가에게 알리기 위한 기도가
어디 있습니까.
축도는 고후13:13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을 그대로 가져다가 하거나, 이를 변형시키거나, 이에 내용을 더하거나 하여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니냐고요? 아니지요. 고후13:13의 이 말씀은 번역이 잘못된 것입니다. 개역 개정 성경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 종결어미를 아주 낮춤의 해라체로 번역한 성경은 모두 오역입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 성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라고, 두란노서원에서 나온
<우리말비전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생인 것은 축도에서
‘너희 무리’라는 표현을 다른 말로 대체하거나 아예 빼고 한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권위의식에 찌들었다 하더라도 무쇠 같은 심장이 아니고서는
이 표현을 그대로 쓸 수가 없을 테지요.
내친김에 ‘지어다’도 높임 종결어미로 바꿀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물론 권위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좋은 것이지요. 나쁜 것은 권위의식입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자기에게 있지도 않은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권위의식이 나쁜 것입니다.
그 같은 의식의 소유자들은 흔히 권위를, 목을 빳빳하게 세워 힘을 주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같은 것이 교만, 거만, 거드름 같은 행위를 양산(量産)하지요. 범접할 수 없는 무게를 갖는 것이 최상의 권위라는 착각을 불러 일이키기도 하고요. 
그러나 진정한 권위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겸손, 양손, 겸양, 온유 같은 것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다가가 손을 잡고 어리광이라도 피우고 싶은, 그런 그(분)가 다 옳으므로 무조건 따르고 순종하고 싶은, 그리고 그(분)가 하나님이라면 거역함의 불이익 때문이 아니라,
따르는 것이 가장 복되다 믿어 따르고 순종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권위입니다. 
 
그런데 그 같은 권위라 할지라도 거기에서 사랑이 빠지면 속 빈 강정이 되기 쉽습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전13:2 참조) 했는데 왜 아니겠습니까. 사랑은 일반적인 의미의 권위의 힘을 능가합니다. 기독교 신앙에 권위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내면 전체가 사랑으로 채워진, 사랑의 다른 이름으로서의 권위여야 합니다. 권위의 속살이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성경이니까 오역된 내용까지도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도 목사가 성도들을 향하여 ‘마땅히 그렇게 하여라’라는 의미의 ‘지어다’로 축도라는 것을 해야 하나요?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목사는 성도들에게 있어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도, 대신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교회에서의 포지션일 뿐입니다. 높고 낮음도 계급도 아닙니다. 굳이 계급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교회 소속원 모두가 동급입니다.
목사는 성도들과 하나님의 중간에 위치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오역일지라도 그에 따라야 한다는
목사님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성경이니까 오역된 내용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옛날에는 군사부일체로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어서 그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 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 아니냐는 것이었지요.
이는 목사 자신의 권위의식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무지로 인해
성경의 권위를 오해한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을 성경의 권위라는 굳어진
의식의 틀에 갇혀 사고가 기능하지 못한 것이지요.

이 또한 전술한 것과는 다른 권위의식의 발로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권위의식은 앞에서 말한 겸손, 양손, 겸양, 온유 같은 것들을 망가뜨려 사랑을 잠식합니다. 그런데 사랑 실천의 선봉에 서야 할 목사들 중에 이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이 많다는 게
지적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교회 현실입니다.

권위의식은 우월감을 낳기도 하는데, 많은 목사님들이 그 좋은 예가 아닌가 합니다.
그들 목사님 가운데에는 목사니까 당연히 자기가 교인들보다 믿음이 좋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을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의 정도를 하나님 아닌 인간이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떻든 그런 생각은 바른 것이 되지 못합니다.
목사가 신앙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것은 맞지만, 신앙 그 자체도 반드시 좋아야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좋다면 그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말하자면 스포츠에서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보다 기량이 좋은 건 아닌 거와 같은 것이지요.
그런 목사님들은 설교를 통하여 흔히 ‘그런 일은 목사인 나도 잘 안 된다’는 식의 말을 하기도 하는데, ‘하물며 평신도인 여러분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느냐’는 의미가 내포된 말이지요. 그뿐 아니라 지적인 면에서도 자기가 교인들보다 우위라는 생각을 갖기도 하는데,
성경에 관해서라면 대체적으로 맞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다른 것도 그렇다 생각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옛날 국민들의 교육수준이 높지 않았을 때는 지적인 모든 면에서 대체로 목사가 교인들보다 앞섰던 것이 맞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 졸업자들로 넘쳐나고 대학원을 나왔다 해도 대수롭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박사도 주변에 늘비한 게 현실입니다.

박사에 대해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요?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것일 뿐입니다.
박사가 되기까지 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를 저도 압니다.
그 과정을 통해 병을 얻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지요. 그러나 그런 박사들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전공에서라면 뛰어나지만, 모든 면에서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한 우물을 깊이 파다보니 오히려 다른 면에서는 뒤지기까지 합니다.
그것이 오늘의 지적 현실입니다.
지식 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현대이니만큼 더더욱 그렇습니다.
목사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교인들 중에는 각각의 전문분야 면에서 볼 때
목사보다 나은 사람이 얼마든지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목사에 따라서는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체 자기가 교인들보다 앞선다는 생각을 하려 합니다. 그러다보니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지요.
예를 들어 교회건물을 신축하거나 개축하며 교인 중에 유능한 건축가들이 있는데도 그들의 말은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밀고 나가는 것 같은 경우이지요.
인터넷을 뒤져 설교 준비를 하다 보니 말씀선포라며
터무니도 없는 엉뚱한 말들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물론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지금과 같은 지식의 홍수시대에 대처하는 데 인터넷만큼 유용한 이기(利器)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공하는 정보에는 거짓의 것도, 질이 나쁜 것도 다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짜 뉴스 같은 것도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용자는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별 생각 없이 인터넷으로 얻은 정보를 활용하다 보면 거짓을 참인 것처럼 말하는
실수도 하게 됩니다.
소설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는 것 같은 말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한강이 받은 것은 노벨상이 아니라  맨부커상인데도 말입니다.
교회를 섬기고 교인들을 바른 믿음의 길로 인도하는 일은, 아니 인도라기보다 안내라 하고 싶은데, 어떻든 그런 일은 권위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권위로 하고 싶다면 그 권위는 겸손, 양손, 겸양, 온유 같은 것을 바탕으로 한 사랑, 그런 사랑으로 속을 채운 그런 권위로 해야 합니다.
속살이 사랑인 권위, 사랑의 다른 이름으로서의 권위, 그런 권위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11:29)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대호 21-12-17 16:36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인숙 22-01-12 00:19
 
항상 깨어있어 옳고 그른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도록 더 배우고 깊이 생각하며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이찬양 22-01-22 18:04
 
우리 모두가 제사장임을 잊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앞에 바로 서야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봄날 22-01-25 21:34
 
겸손, 양손, 겸양, 온유 같은 것을 바탕으로 한 사랑, 그런 사랑으로 속을 채운 그런 권위로 해야 합니다!!!!
훈훈 22-02-10 10:15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어느 자리에 있던 동등하며 항상 겸손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로케 22-02-13 20:49
 
항상 겸손하고 타인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그럴수록 세상은 더 올바르게 나아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