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1-22 11:30
성경 번역, 어떻게 해야 하나(최재석 “올해에 나올 <새한글 성경>에 대한 아쉬움”에 부쳐)
 글쓴이 : 우리집
조회 : 178  
성경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


‘성경 번역, 어떻게 해야 하나?’ 일반 성도들에게 적절한 질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번역은 특별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극히 제한된 소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같은 번역이 성경으로 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세상에 성경만큼 어려운 번역도, 중요한 번역도 없습니다.

성경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과도 같은 말입니다. 환언하면 성경을 알아야 하나님을 안다는 말이 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모르는 하나님을 믿을 순 없는 일이지요. 잘못 알면 하나님 아닌 대상을 하나님으로 알고 믿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 말고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 주는 것이 없습니다. 천지만물에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나타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롬1:20), 그만으로는 하나님을 안다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무오(無誤)하냐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저 또한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였다고는 하나 허물투성이인 인간들의 손에 의한 것이니 오류가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에게 성경보다 정확히 성삼위 하나님을 알게 해 주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니 ‘성경보다’가 아니라 성경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2000년 전 ‘요한계시록’을 마지막으로 세상에 나오는 것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니 성경 외의 것을 들어 하나님 어쩌고 하는 것은 다 거짓이고 적그리스도적의 행위입니다.
성경은 그만큼 중대한, 아니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고 또 중대한 책입니다. 그러니만큼 그 번역 또한 실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대한성서공회에서 성경의 <새한글 성경전서(가칭)>라는 이름의 새로운 번역본을 내놓는다고 합니다. 성경 번역은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면에서 잘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한글 성경전서(가칭)> 번역의 실상

대한성서공회는 이번 번역의 방법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1) 다매체 시대 상황에 맞추어 짧은 문장으로 나누어 번역하고,
2) 원문의 어순을 살려 원문의 강조점을 더 잘 드러내고,
3) 새 번역어를 사용하여 원문 이해의 폭을 넓히고,
4) 문학 유형에 따라 여러 마침꼴을 썼습니다.

이에 더해 ‘그처럼 원문에 더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한글로 번역한 성경’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네 항목 중 4) 외의 세 항목 모두에 허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당당뉴스>에 최재석 교수의 “올해에 나올 <새한글 성경>에 대한 아쉬움”이라는 칼럼이 올라왔고, 그에 댓글이 몇 개 달렸는데, 그 내용은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렸습니다. 이에 저는 대한성서공회 쪽 견해를 더하여 자신의 견해를 피력해 보려고 합니다.

성서공회는 ‘원문에 더 충실하면서도’라 말하는데, ‘원문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번역에 있어 대원칙입니다. ‘더’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번역이 무엇입니까. 원문을 그것과 가장 비슷하게 (원문의 언어와)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입니다. 원문과 똑같이 옮길 수만 있다면 그게 최선이지만,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원문과 가장 비슷하게 옮긴 것을 번역에서는 등가성(等價性)이 높다하는데, 무엇에 대한 등가성일까요. 두말 할 것도 없이 작품의 전체, 총체적인 면에서지요.
성서공회는 이번 번역 성경을 ‘젊은 세대가 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표현으로 번역되는’ ‘세대를 위한 새로운 성경’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등가성과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느냐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에 소개한 번역 방법 2)에 ‘원문의 어순을 살려 원문의 강조점을 더 잘 드러’낸다 했는데, 원문의 어순을 살리는 것이 원문의 강조점을 더 잘 드러낸다는 논리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만약 그것이 직역 면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옳은 견해가 아닙니다. 오히려 직역보다 의역이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번역에 대한 바른 이해는 되지 않습니다. 키케로 이래 2000년 동안 번역은 직역과 의역이라고 하는 두 가지 방법에 의해 이루어져 왔고, 그 중 어느 것이 더 좋으냐고 하는 논쟁이 있어온 것도 어제 오늘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이르러 라이프찌히 학파를 중심으로 등가중심 번역이 번역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아왔습니다.

그러니 번역자는 직역과 의역이라는 개념조차도 초월해야 합니다. 원본의 언어와 다른 언어로 원본과 가장 가깝게 옮기는 것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직역도 필요 없고 의역도 필요 없습니다. 번역만이 필요합니다. 원문의 어순을 살려야 원문의 강조점이 더 잘 드러난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번역에 손을 대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성서공회는 ‘히브리어 본문의 어순을 되도록 살려서 번역했’다며 시편 3장 7절을 예로 들고 있는데, 여기에 그것을 공동번역의 것과 대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직접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 새한글 성경 ―
일어나십시오, 오, 여호와님!
  나를 구해 주십시오, 오, 나의 하나님!
주님이 치셨습니다, 내 모든 원수의 뺨을요.
 ‌ 그릇된 사람들의 이빨을 주님이 부러뜨리셨습니다.

― 공동번역 ―
야훼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 구하여 주소서.
당신은 내 원수의 턱을 내리치시고
악한 자의 이빨을 부수시는 분,
야훼여, 승리는 당신께 있사오니,
당신의 백성에게 복을 내리소서.

도치법을 써 ‘매우 긴박한 상황’을 표현함으로 ‘본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인데, 언뜻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시인이 정말로 ‘긴박한 상황’ 드러내고자 했다면 ‘오,’라고 하는 감탄사는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긴박한 상황’을 드러내는 시(詩)라기보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기도시라는 느낌의 더 큽니다. 그리고 방법 4)에서 ‘문학 유형’을 언급했는데, 이 번역은 ‘시라는 장르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가 아니라 산문에 더 어울리는 표현 같습니다.
그럼에도 성서공회는 ‘이처럼 원문의 어순이 번역문에 반영되면 원문의 분위기까지 전달’된다며, 그러므로 ‘독자들이 본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찬을 하는데, 그 판단 또한 독자 여러분께서 해 보시기 바랍니다.
번역 방법 3)은 ‘새 번역어를 사용하여 원문 이해의 폭을 넓’혔다고 하는데, 시편 1장 2절과 3절, 그리고 6절의  번역을 보면 이렇습니다.

여호와의 가르침에 자신의 기쁨을 두고서,
여호와의 가르침을 낮이든 밤이든 소리 내어 읽습니다.(2절)
물길 곁에 심은 나무 같지요.
철 따라 열매 맺고
잎사귀 마르지 않는 나무지요.
무엇을 하든지 성공합니다. (3절)

여호와가 알고 계시거든요, 올바른 사람들의 길은.
그릇된 사람들의 길은 사라질 것입니다.(6절)
 
2절에 ‘낮이든 밤이든’이라는 번역이 있는데, 개역개정 성경 등이 ‘주야로’로 옮기고 있는 것을 굳이 그렇게 옮겨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공동번역은 ‘밤낮으로’로 옮기고 있는데, 이것이 글자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해서 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주야로’로 하면 되는 것이지요. 한자어를 쉽게 풀어서 쓰기 위해서라면 말이 안 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다 아는 단어니까요. ‘문학 유형’을 번역의 방법으로 제시한다 하는데, 시어(詩語)로도 그리 적절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 ‘물길 곁에 심은 나무 같지요’의 ‘물길 곁’이라는 표현은 생소하기 그지없는 말입니다. 번역에 ‘낯설게 하기’라는 이론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역 개정 번역이 ‘시냇가’라고 옮긴 것을 ‘물길 곁’으로 번역한 것은 졸역이라기보다는 오역 쪽에 가깝습니다.

‘물길’의 사전적 의미는 ‘물위로 배를 타고 다니는 길’ 즉 ‘뱃길’을 말합니다. 하늘에 ‘항공로’가 있다면 물에는 ‘물길’이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물을 보내거나 끌어들이는 통로’라는 의미도 있는데, ‘수로(水路)’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농수로(農水路)’ 같은 것이지요. 또 하나 ‘강물이나 개천 따위의 물이 흐르는 줄기’라는 의미도 있는데, 이를 근거로 ‘물길 곁’으로 번역했다 해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물길 곁에 심은 나무’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얼마나 더 정감이 가는 말인가요. 시냇가! 얼마나 아름다운 우리말인가요. 시어(詩語)로도 ‘물길 곁’보다 ‘시냇가’가 더 적절합니다.

6절에는 개역 개정 성경이 ‘의인’과 ‘악인’으로 옮긴 것을 ‘올바른 사람’과 ‘그릇된 사람’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성서공회는 ’여기서 말하는 “올바름”과 “그릇됨”은 사람의 윤리적인 잣대로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라며,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이 잘 이루어지도록 힘쓰는 사람이 “올바른 사람’”이고, ‘입으로는 하나님을 들먹이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자신의 이익을 폭력을 써서 기어코 얻어 내는 사람은 “그릇된 사람”’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성서학의 최신 연구 결과와 최신 외국어 번역본들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그 같은 연구 결과나 번역본들 또한 신뢰할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올바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이 잘 이루어지도록 힘쓰는 사람’이고, ‘그릇된 사람’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들먹이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자신의 이익을 폭력을 써서 기어코 얻어 내는 사람’인데, ‘의인’과 ‘악인’은 그렇지 않다니 어디에 근거를 둔 견해일까요.


최재석 교수의 칼럼에 달린 댓글을 보고 생각난 것들

저는 여기까지 최재석 교수의 칼럼 “올해에 나올 <새한글 성경>에 대한 아쉬움”의 견해와 대동소이한 말씀을 드렸는데, 이제 최 교수의 칼럼에 달린 댓글에 대해서도 좀 말씀을 드려 보려합니다.
댓글은 ‘성경 번역엔 최고의 유일한 번역이란 없’다며 ‘다양한 번역이 필수’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성경뿐 아니라 좀 긴 글이라면 어떤 것이 됐건 ‘최고의 유일한 번역’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번역’이 ‘필수’가 아니라, ‘원문에 가장 가깝게 하는 번역’이 ‘필수’이지요.
댓글도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하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야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성경의 특성상 원문의 형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데에는 견해를 좀 달리합니다. 원문특성상의 형식을 반영하는 것 또한 원문의 의미를 좀 더 잘 나타내기 위한 것이거든요.
댓글은 또 ‘번역은 번역 원칙에 따라 용도가 다’르다고도 하는데, 저는 대학에서 번역 강의도 하고 실제로 번역을 해오기도 했지만, 그러며 다양한 번역에 대한 이론서를 섭렵하고 번역에 대한 책을 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그런 번역이론에 접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새한글 성경이 용도에 따라 원칙을 정해 번역했다는 의미로 그 같은 말을 했다면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이제까지 드린 말씀에서 이미 충족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용도’에 따라 직역 성경도, 의역 성경도, 이 둘을 절충한 성경도 필요하다는 의미의 말을 하는데, 이 또한 ‘번역원칙’에 반하는 견해입니다. 개개(箇箇)가 저마다의 입맛에 맞게 세운 원칙이라면 그것은 원칙이 아닙니다. 새한글성경이 제시한 번역 방법이 원칙이라면 그 또한 마찬가지지요.
‘통독’에는 의역성경이, ‘연구’나 ‘묵상’에는 직역성경이 좋다는 의미의 말도 하는데, 그러며 ‘용도’에 따라 골라서 보면 된다고도 하는데,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로 인해 우후죽순처럼 그야말로 다양한 성경들이 넘쳐난다면 그로 인한 혼란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질스런 번역 성경도 나올 게 불을 보듯 빤하지 않습니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번역에는 직역도 의역도 필요치 않습니다. 원본에 가장 가까운 번역 하나면 됩니다.
‘통독’용 성경이라는 데에는 더욱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교회들에서 통용되고 있는 개역 개정 성경이 있는데 통독용이 따로 필요하다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통독’이 무엇입니까. 한 권의 책처럼 긴 글의 내용 얼개를 알기 위해 빠른 속도로 훑어 읽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의 경우는 정독을 하기에 앞서 그런 목적으로 그리 읽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니 통독용이 따로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자연스러운게 번역의 최종 목표는 아니’라고도 하는데, 이에 또한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확한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정확한 내용 이해’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 사람에겐’, 그러니까 그 같은 사람들에게는 ‘새한글성경’이 좋다고도 하는데, 글쎄요, 정말 그럴까요.
‘좀 융통성 있게 적절히 조화시킨 번역한 역본’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그리고 그런 역본이 ‘인기가 많’다고도 하는데, 번역에 있어 번역자에게 ‘융통성’ 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유’도 없습니다. 있다면 원문과 가장 가깝게 옮기는 방법론상의 ‘자유’가 있을 뿐입니다. 인기가 많다고 좋은 번역도 아니고요.
그리고 ‘성도들에게 용도에 따른 적절한 번역본을 안내해주지 않는 것은 목사님들의 직무유기’라고도 하는데, 목사님들의  직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쓰고 있는 성경의 내용을, 아니 그 성경을 텍스트로 하여 원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지요.
이와 연관이 있는, 댓글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연구용 성경’ ‘주해작업’ 운운한 것이 그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연구용’이나 ‘주해작업’용 성경이 따로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연구·주해·주석 같은 일은 고도의 전문지식을 가진 신학자나 신학 연구자들이 성경 원본을 텍스트로 하여 선행연구의 결과물 등을 참고로 현재 통용되고 있는 성경을 통해 하는 것이고, 일반 성도들은 그 혜택을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대한성서공회에 드리는 고언

끝으로 대한성서공회에 한 말씀 드립니다. ‘번역자 36명, 국어감수자 3명으로 구성된 “번역 위원회”에서 2012년 12월 14일부터 번역을 시작하였’다 하셨는데, 번역에 39명이라고 하는, 적다고만은 할 수 없는 전문가가 참여했고, 이에 9년이라고 하는 짧지 않은 연월이 소요됐다는 것인데, 그 정도면 외형상으로 볼 때 어느 정도 합격선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외적 요소보다 내(용)적인 것입니다. 국어감수자가 3명이라 했는데, 이는 수적으로도 좀 모자란다는 생각이고, 그중에 국문학자가 몇 명이나 참여했는가도 궁금합니다. 최소한 산문 쪽과 운문(시) 쪽에 1명씩은 참여해야 한다고, 아니 분야별로 복수의 인원이 참여해야 실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요 기간이 9년이면 결코 짧지 않은데, 이 동안 참여자들이 얼마나 몰두하여 작업에 임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문예를 포함한 예술 분야나 학문에서의 일은 집중적으로 몰입해서 할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천양지차가 있습니다.
성경번역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많은 인적자원이 투입되어야 하고, 따라서 거액의 예산도 필요하며 짧지 않은 시간도 소요됩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인간이 성경 말고는 하나님을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없으면 인간에게 하나님은 없습니다. 항상 계시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것이 성경 번역입니다.
아직 인쇄에까지 들어가진 않고 마무리 단계인 것 같은데, 출판을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재작업을 한다는 자세로 검토에 임하시라는 권면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도들이 한글성경은 이 한 권으로 충분하다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번역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필님 21-11-25 16:11
 
올바르게 번역된 성경이 출판되어 저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단계에있는 사람들이 왜곡되지않고 올바르게 출판된 성경 말씀을 들을수 있기를 바랍니다.
로케 21-11-30 18:04
 
저는 종교관련은 잘 몰랐지만 이곳에서 배움을 받고 올바른 표현을 사용해서 번역된 성경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나라의 말조차 여러 사람을 거치면 곡해되기 쉬운데 여러 언어를 거친다는건 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임지수 21-11-30 18:12
 
기독교에서 성경책이란 한국의 한글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다양한 언어들로 번역되며 원문의 내용이 조금씩 변함으로써 왜곡된 내용을 알아야하는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원문의 내용과 가장 가깝게 번역된 성격책이 어서 나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윤지 21-12-01 13:42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색을 지닌 교회가 많은 요즘 성경만큼은 하나님의 뜻대로 번역되길 바랍니다.
이찬양 21-12-07 22:46
 
성경은 주님의 말씀이라 생각이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우리 사람이 어찌 다 알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뜻하신데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만 번역이 되어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이 이끄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겠습니다.
백선희 21-12-07 22:57
 
모든 성경이 옳바르게 번역되는 날이 빨리 다가와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정확이 듣고 읽는 날이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소피아 21-12-11 10:22
 
성경이 없으면 인간에게 하나님은 없습니다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중대한 책인만큼 정확하게 번역되어 출판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봄날 22-01-25 21:42
 
성경이 없으면 인간에게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러니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것이 성경 번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