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1-22 11:27
이해 극난의 사람 바울과 모세(천박한 세상의 대인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
 글쓴이 : 우리집
조회 : 114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8:13)
저는 초신자 시절 이후로 한동안 바울의 이 말을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홀로 진리이신 하나님께서는,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옳고 바른길로 가라 하셨을 뿐 아니라, 고기를 먹는 것이 옳지 않은 것도 바르지 않은 것도 아닌데, 누군가 때문에 그리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써 가며 산다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납득이 되지 않은 것은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기 위함”(고전9:20)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복음전파를 위해서는 주체성이 결여된 꼭두각시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냐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런데요, 바울의 말 가운데 저 같은 사람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기 힘든 구절까지도 있는데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바”라 한 롬9:3의 말씀입니다. 여기에서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통상적인 일가친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라 하는데, 어떻든 그게 누가 됐건 그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지옥 불에 떨어져도 좋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를 여러분께서는 이해하실 수가 있으십니까.
지옥이 어떤 데인지 모를 리가 없는 사도 바울이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께서는 지옥을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막9:48)는 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물론 상징적 표현으로 지옥의 실상을 그대로 설명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옥의 본질이 극한의 고통으로 죽으려 해도 그럴 수조차 없어 영원토록 그리 사는 곳임을 말씀하신 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자기가 그런 영벌을 받아도 좋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일까요.
저는 솔직히 그런 지옥이 무서워서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지금의 저는 하나님이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죄가 없어서도 허물이 없어서도 아니고, 벌보다 사랑을 앞세우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이지요. 만약 잘못에 벌로 책임을 물으셨다면 저는 아직까지 이렇게 살아남아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죄와 허물이 어지간해야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에게 벌 대신 당신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격려하시며 힘도 북돋워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정말이지 오래 참으시며 기다려 주시는 그 사랑을 인생의 하향 길로 접어들어 한참이나 지난 후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만. 어떻든 지금은 그 사랑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못나고 어리석고 완악하지만, 그래도 그분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살게 해 주시라 기도드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만으로도 어여삐 봐 주신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인 우리가 얼마나 옳고 바르게 사느냐보다 얼마나 전폭적으로 당신만을 의지하며 순종하려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게 그 말 아니냐고요? 아니지요. 전자는 선한 행위 자체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후자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겠다는 의지, 곧 순종하겠다는 마음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후자의 마음으로 살면 거기에서 자연히 착한 행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선한 행위 자체를 푯대로 하여 달려가 착해진 것과, 성삼위 하나님을 푯대로 달려가다 보니 착해진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말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15:22)는 말이지요.
그건 그렇고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 중에 가장 무서운 형벌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지요. 지옥형벌이지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나도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그러한 무서운 형벌까지도 마다하지 않겠다했으니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역시 초신자 시절에인데요, 바울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자랑하지 말라는 것은 저 같은 초신자도 알 수 있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상식인데, 그가 자기 자랑을 늘어지게 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 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고후11:22-23)

이에 그의 자랑은 한참이나 더 이어지는데, 이에 대해 제가 아는 신학생들도 이해 못할 언사라 했고, 저는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그리 오래지 않아 바울이 타의 영혼구원문제에 얼마나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가를 알았을 때는, 사도된 그의 영생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인한 열정에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바’라 한 말에는 아직껏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말은 모세도 한 적이 있는데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께 죄를 짓자 모세는 애간장이 타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주께서 거룩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32:32)
저는 이제 와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도 모세도 실제로 자기가 지옥 불에 떨어져도 좋다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요. 동족이 그 같은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된 데 대한 애끓는 마음의 표현이었던 것이지요.
저는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이 시대 인간들의 대인관계입니다. 타인을 생각하는 것이 바울이나 모세 같을 수는 없을지라도 조금은 깊이 있는, 진지한 마음에 의한 관계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 시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냥 적당히 즐기는 관계가 대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만나서 희희낙락 즐기다가도 그로 인한 좀 묵직한 손실이 우려되면 미친놈이라며 안면을 바꾸는 사람들이 들끓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상대방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식의 천박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손실을 싫어하다보니 나누는 것 또한 꺼려하는 사람들이지요. 조그마한 거라도 자기 손에서 떠나보낼 때는 반대급부를 계산합니다. 하다못해 자신의 이미지 개선이라는 점이라도 생각하지요.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아니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요. 그저 교회출석 잘하고, 좀 더 열심 있는 사람이라면 힘써 봉사하는 정도로 자신을 꽤 괜찮은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숨까지도 내어놓으라 하십니다. 그렇다고 죽으라는 것은 아니고, 주 하나님만을 위해 살라는 것이지요.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길을 죽음이 막아서면 피하지 말고 죽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길로 가다가 크나큰 손실이 닥치면 그 손실을 주저 말고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홀로 진리이신 성삼위 하나님의 말씀, 성경 66권의 진리의 말씀, 그 말씀의 핵심적인 가르침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이런 말을 믿는 사람들 대개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는 성경을, 영원불변의 진리인 성경말씀을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된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경 66권이 세워 놓은 푯대만을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가면 전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 믿고 영혼구원을 받는 것이 믿음이라고요? 그렇지요. 맞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진짜가 되기 위해서는 순종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행복을 주시는 것이지요. 언제까지도 갈하지 않는 생수 같은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살아있는 생생한 믿음입니다.

두필님 21-11-25 16:00
 
하나님만을위해 살수 있는 순종 하는삶을 사는 순간 저에게는 축복이겠죠?
그러한 삶을  살아갈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로케 21-11-30 18:11
 
하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불변이고 항상 올바른 것이겠죠 그것을 믿고 나아가는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찬양 21-12-07 22:1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게 우리에게는 축복이고 올바른 길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이 보이셨던 그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백선희 21-12-07 22:51
 
초심자인 저는 아직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것을 아직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옳바른 길이라 믿고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소피아 21-12-11 10:06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처럼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주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순종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