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5-21 13:48
믿음이라는 것의 실체
 글쓴이 : 이다영
조회 : 308  
믿음이라는 것의 실체


좀 모자라고 많이 덜떨어진 사람 이야기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롬3:28, 5:1),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엡28-9) 하는데, 아니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전은 무엇인가를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그리 되리라고 여기는 것이라 하는데요, 그리고 종교에서는 신앙의 대상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따르는 것이라 말하는데요,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에서의 그것, 그러니까 의롭다 하심과 구원을 받게 하는 그 ‘믿음’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물론 기독교 신자라면 누구나 명확하게는 아닐지라도, 희미하고 막연하게일지라도 그것을 나름대로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라 하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거의 날마다, 아니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합니다. 그를 내용으로 기도드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기도를 좀 모자라는 사람처럼 지금 여기에 다 까발려 보려 합니다. 아니 많이 덜떨어진 사람이 하는 말이라 생각하시고 귀를 반쯤만 여시어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일상에서 기돗배를 타고 하나님의 품으로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사랑해 주시고 계시는 아들 저, 아버지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는 저 임종석, 이 한 시간도 아버지께서 그 귀하고 크신 사랑의 은혜로 인도해 주심에 따라 기도드리려고 이렇게 아버지께로 왔습니다.
(누구도 아닌 자기를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것은 너무 교만한 것 아니냐 할 분도 계실지 모르나, 아닙니다. 제가 자의적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심에 따라 드리는 것이니 교만이 아니라 은혜인 것이지요. 그럼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것이라 믿느냐고요? 기도의 내용 중 저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내용이 많거든요. 또 더 확실한 증거가 있으나 그것은 정말 자랑이라 오해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말씀드리는 것을 자제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그분의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지요.)
이 시간의 이 기도도 아버지께서 붙잡아 인도하여 주옵소서. 성령 충만케 하시어 그분의 주관·주도로 기도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그분께서 아버지의 뜻만을 따라 그 뜻으로 기도드리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과 섭리를 깨닫게 하시고, 이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뜻을 깨달게 하시어 그 뜻에 따라 이 자식의 전존재를, 털끝 하나까지도 다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게 하여 주옵소서.
이 같은 기도를, 영혼의 가장 깊고 내밀한 곳으로부터 우러나게 하시어 온몸과 마음으로 드리게 하옵소서.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 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구약시대의 번제의 연기가 향기로 피어올라 하나님께서 기쁘게 흠향(歆饗)하신 것 같은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저의 전존재를 남김없이 모두 드림으로써 향기로 피어올라 기쁘게 받으시고 이루어 주시는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한나의 기도,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이어지는 한나의 기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를 철저하게 종이 되게 하시어 제 안에 아버지 하나님, 성삼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죽도록 사랑함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그런데 세상적인 것, (아담으로 인한 원죄로 말미암은) 인간적인 것 즉 육적인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이오니, 이런 것들을 배설물처럼 미련 없이 버리게 하옵소서.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적인 것=인간적인 것=육적인 것은 물질이라든지 사회적 출세 같은 것을 말하는데, 이것들 버린다 하는 것은 그로 인한 사욕을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이것들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쓴다면 이는 그보다 보배로울 것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옛사람, 다시 말해 자신의 못된 자아를 죽이는 것이지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존재하는(롬14:8) 이 자식이게 하옵소서. 그것이 이 자식을 온전히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오며, 또 그것이 이 자식의 전존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옵나이다(롬12:1).
(이를, 그러니까 자신의 전존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 당신께서 가장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라 말씀하시며, 그것은 즉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인데(롬12:1-2), 그것은 또 우리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마5:16)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는 그리스도의 빛(마5:14)이며, 각박한 세상에 그리스도의 소금(마5:13)으로 녹아져 세상에 사람 사는 맛을 내는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랑이 되면 믿음 아닌 행위에 무게가 실려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온전히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다 함은 이 저를 산 채로 제물로 하여 아버지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이온데, 그리고 그것은 곧 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러니까 저의 모든 것, 전존재를 다 바쳐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온데(마22:37), 그리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마22:39) 하셨아온데, 이 자식도 모든 사람을 그리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제 가정에서부터, 그것도 저희 부부로부터 시작하여 자식, 부모, 형제자매, 일가친척, 교회, 복음, 직장 구성원, 친구, 친지, 일상에서 잠시잠간 만나거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까지도, 매스컴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게 하옵소서.
(저는 이미 오래 전에 퇴직하였으니 직장이 있을 리 없고, 부모님도 돌아가신지 오래이니 계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두 번씩 기도드리고 있어, 전반은 저희 부부와 가정과 자식들 외의 모든 것을, 후반은 자식들과 손자들, 그 가정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그 두 번의 기도 내용이 겹쳐지는 것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하나, 당신이 기도라고 하는 것이 당치나 하느냐 이맛살을 찌푸리실 분도 계시리라 생각하는데, 기도는 본래 목표점을 바라보며 드리는 것이지 도달점이 아니라는 것 또한 이해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어떻든 기도는 있는 힘을 다하여 우리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처럼 드리는 것입니다. 사력을 다해 드리는 것이지요. 물론 다정한 부자가 만나 정감어린 대화를 나누듯이 드리는 기도가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합니다만, 이 또한 효성 지극한 자식이라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다른 데로 갈리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그 사랑의 중심에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신 주님께서 예로 들어 하신 말씀 중의 ‘작은 자’ 곧 사회적 약자를 두게 하옵소서.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형제자매들·일가친척들 중에서도, 그리고 친구·친지들 중에서도, 사회에서도, 어디에서도 그리하게 하옵소서.
(저는 이 부분의 기도를 드릴 때면 예수님의 이 말씀이 내면을 가득 채워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명에 젖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고서는 하실 수 없는 말씀이라는 생각에 나약한 믿음일지라도 조금은 깊어짐을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교회에서는 마음 넉넉하게 사랑을 나누어 성도들로부터 추앙을 받으면서도 형제자매, 일가친척에게는 유난히 인색한 교인이 있음을 보신 적이 없나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 그분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마22:40)이라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사는 것이 이 자식을 향하신 아버지의 뜻인 줄로 믿사오니, 그리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리 사는 것과 동시에, 아니 그리 사는 것 그 자체이오니, 자식·손자들까지를 포함한 저희 가정(들)의 경제를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귀하고 크신 사랑으로 친히 운영하여 주옵소서. 저희로 하여금 아버지를 기쁘고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경제로 운영하여 주옵소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 하셨아오니, 적어도 조금은 넉넉한 경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주신 물질을 모으는 축복이 아니고 누리는 축복도 아닌,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그 귀하고 거룩하신 뜻에 따라 쓰는 축복의 경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쓰되 좀 더 효과적으로 좀 더 많이 쓰기 위해 절약하여 검소한 생활을 하게 하시고, 하되 넉넉한 천국의 부요함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가운데 천국으로 누리게 하옵소서. 
물질뿐 아니라 시간이 됐건 건강이 됐건, 재능·기능이 됐건 사회적 위치가 됐건, 무어가 됐건 그것을 사랑으로 쓰게 하옵소서. 그러며 아버지께서 마음의 평안과 가정의 평화와 이웃과의 화평을 주시어 은혜롭게 누리게 하옵소서.
어렵고 또 어려운 것이 온데, 범사에 감사하고(살전5:18) 기뻐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살전5:16). 일이 잘 풀려 순조롭게 진행될 때뿐 아니라, 그러지 못할 때에도 감사하며 기뻐하게 하옵소서.
이와 같은 모든 것이 다 은혜이오니 감사드리며 기쁨으로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감사의 중심에 믿게 하시어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여주심에 대한 감사가 있게 하옵소서. 구원을 얻어 천국백성이 되게 하심을 감사하게 하옵소서. 
그렇게 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성삼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어 죽도록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온데, 그리고 그것이 곧 저를 포함한 우리 믿는 자들 모두를 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온데, 그 뜻에 따라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삶 자체가 세상을 밝게 비추는 그리스도의 빛이요, 그리스도의 소금으로 녹아져 각박하기만 한 세상에 살맛이 나게 하는 것이온데, 이 아들로 하여금 그리 살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향기로 기쁘게 받으시는 산제사, 예배로 드리는 일상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삶 자체로 아버지를 기뻐하시고 영화롭게 해 드리게 하옵소서.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로 좀 더 가까이 가려 하는 삶을 살려는 사람들을 저 악하고 추한 마귀사탄은 가만 놔두려 하지 않사옵나이다. 저 추악한 것들은 우리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목까지도 죄려 안간힘을 쓰옵나이다. 그러한 저 더러운 것들로부터 이 자식을, (자식들의 가정을 포함한) 가정을 지켜 주옵소서. 저들의 사탕발린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의 야비한 궤계에 넘어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맷집을 좋게 하시어 영적 강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의 전신갑주를 입고, 믿음의 완전무장을 하여 저들이 집적대지 못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의 용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상으로

기도를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으로 끝내지 않았냐고요? 그러네요. 그런데, 기도는 아직 끝난 게 아니거든요. 기도 내용을 다 말씀드릴 순 없잖아요.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끊은 것입니다. 그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떻든 제가 생각하는 ‘믿음’이란 지금까지 드린 기도의 내용 그런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산상수훈 중에서도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는데요, 여기에서의 ‘그의 나라와 그의 의’, 곧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란 믿는 사람들이 중점적으로 추구해야 가치이지요. 그분의 절대적인 통치권을 인정하고 그분께 순종함으로 그분의 뜻만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걸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이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지요. 믿는 우리라 해도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죄성을 지니고 태어나 세상에서 그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혹 독야청청할 수 있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인 우리가 그러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아니 그분은 우리(나)의 안에 계시는 우리(나)의 주인이시니 주인이신 그분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 했는데, 자신의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곧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이신 그분께서는 어떠셨습니까.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사랑하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전파하신 것도,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다 사랑이었습니다.
공자 같은 말 좀 어지간히 하라고요? 아, 실례!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니 그냥 눈감고 넘어가 주시지요. 어떻든 우리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도달점은 없습니다. 있긴 하나 그 지점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목표가 있을 뿐인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에게 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엔 달리 없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분을 푯대로 하여 달려가라 하시니 그리할 뿐입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8부 능선까지 올라와 거의 다 왔다는 생각으로 안심하여 한숨자고 있는 사람보다, 아직 2부나 3분 능선에도 미처 오르지 못했을지라도 정상을 바라보며 사력을 다해 올라가고 있는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그런 사람을 이미 정상에 도달한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은혜인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지만(롬3:10),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 하나만을 보시고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롬3:24,5:1). 그런데 그 ‘믿음’이라는 것이 바로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그 ‘믿음’이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이신칭의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냐고요? 아니지요. 그럴 리가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롬5:1)는 이신칭의 교리를 부정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그러나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행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믿음’만으로라고 하는 주장은 정말이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다 아시는 대로 이 주장은 개혁자 루터가 처음 시작한 것인데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라는 말씀을 근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이 말씀을 잘못 이해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의 의미는 ‘믿음에서부터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뜻인데, 그 첫 번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라 고백하는 믿음,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초보적 믿음을 말하고, 두 번째 ‘믿음’은 성숙해 가는 믿음, 성화를 이뤄 가는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거든요. 말하자면 지금까지 제가 자신의 기도를 통해 말씀드린 그런 믿음인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누구나 모두가 이미 믿기 시작하여 좀 더 성숙한 믿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이 같은 논쟁은 우리에게 독이 될 뿐 이득이 될 건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다만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달려갈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냐고요? 그러네요. 우리 인간들은 본래 자기가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원하는 속성이 있거든요. 그런데요, 이 세상을 천국으로 누리며 하늘나라의 왕자·공주로 사는 특권을 부여받았는데 무엇을 더 바라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나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요, 그 외에도 주시는 것이 더 있다니까요. 좀 전에 말씀드린 마6:33 말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의 후반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바라보고 따라 살면 육신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까지 채워주신다는 의미거든요. 어떻습니까. 이 이상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지요. 복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1:16)

두필님 21-06-05 08:54
 
믿음이란건 아직 저에게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좀더 열심히 배워서 믿음 충만한 삶을 살 도록 노력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윤지 21-06-07 18:12
 
타인을 사랑하고 섬길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고 생각합니다.
나만을 위한것보다 모두를 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백선희 21-06-07 18:26
 
차근차근 쌓아가는 믿음과 기도를 통하여 제 마음 가짐 또한 변하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록 많이 부족하지만 어떠한 일이 닥칠 때마다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천천히 많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율리아나 21-06-07 18:28
 
자기가  현재에 한일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기도보다는 더 성숙한 믿음으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만정 21-06-07 19:42
 
저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고 선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믿음, 기도 아직 어색한 말과 행동이지만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영미 21-06-07 19:42
 
주일예배 시간에 저희 목사님의 기도를 듣다보면 모든 것에 감사하고 제 삶에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아직은 믿음이 많이 부족한지라 그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총이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매사에 늘 감사함을 느끼려하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의 기도이지만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기도드림에 저도 언젠가는 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박효인 21-06-07 22:46
 
믿음이 정말 중요한 사실을 알지만 믿음이 부족하고 어색한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규연애비 21-06-10 11:42
 
믿음 사랑 소망 기쁨 중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둥이아빠 21-06-13 16:10
 
온전한 믿음 가운데 낮은 자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랑과 함께 하고자 하는 소망 등 모두가 가슴속에 잘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이강현 21-06-14 19:4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자라야 들어간다는 성구가 은혜가 됩니다. 믿음이 부족한 저에게 다시회개하고 기도하면서 생각합니다.
소피아 21-06-18 11:34
 
믿음으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크리스천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행복가득 21-06-18 14:45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라 고백하는 믿음으로 시작해 예수그리스도를 푯대삼아 공의와 정의, 이웃사랑을 향한  성숙해 가는 믿음으로 더욱 성화해 나가는 삶을 이루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