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2-04 16:32
그대 옆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글쓴이 : 이다영
조회 : 382  
그대 옆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 주기철 목사 부인 오정모 사모 이야기 ―


처녀의 몸에서 다섯 아이의 어머니로

저는 ‘그의 아내 오정모 사모를 아시나요?’라는 부제가 달린 “주기철 목사, 그는 순교자일까요, 순국열사일까요”라는 글에서 다음엔 오정모 사모에 대해 쓰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다음에 해당하는 지난번 글에는 사정이 있어 다른 말씀을 드렸고 지금 그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지지난 번 글에서는 주기철 목사님과 오정모 사모님의 결혼과정을 간단히 소개해 드렸는데요, 목사님은 재혼이었고 사모님은 초혼이었습니다. 당시 목사님께는 전부인 소생의 16살, 13살, 8살, 5살, 그리고 3살 난 막둥이가 있었으니 사모님으로서는 처녀의 몸으로부터 갑자기 다섯 아이의 어머니가 된 것이지요. 아이들 중 5살짜리가 딸이고 모두 아들인데, 본래는 5남 1녀였어야 하는데, 한 아들이 세상을 떠 4남 1녀가 된 것입니다.
사모님은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기도 전에 목사님이 평양 산정현교회로 교회를 옮겨 감에 따라 일제의 탄압이 극심한 그 땅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요, 그게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일제가 주기철 목사와 같은 신앙 투철한 애국자를 가만 놔둘 리가 없었고, 그것은 곧 사모님의 고난이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에게는 검속 당해 모진 고문을 받다가 풀려나고 다시 검속 당하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1940년 여름 다섯 번째 검속에 의해 평양경찰서에서 평양형무소로 이감되었는데, 거기에서 1944년 4월 21일 오후 4시 사모님과의 마지막 면회 후 그날 밤 9시에 순교하셨습니다. 형무소 병감에서였지요.
많은 교회, 많은 신앙의 지도자들이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민의례일 뿐이라며 신사참배를 찬성하여 신앙과 민족을 동시에 저버렸던 때였지요. 따라서 목사님의 주님과 민족을 위한 고난 후의 죽음은 순교이자 순국으로 교회와 민족에게 바르고 확고한 좌표를 제시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오정모 사모님에 대해서는 기억하는 사람도 이름조차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실은 그분은 목사님 못지않은 신앙의 자세로 남편의 신앙을 든든하게 받쳐 주는 버팀목과도 같은 존재였거든요. 아니 그분은 그분 자체가 영롱하고 찬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내는 존재였습니다. 실은 그분의 내면을 가득 채운 성삼위 하나님이 내는 빛인 것이지요. 
그럼에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살다 역시 그렇게 가신 분, 그게 오정모 사모님입니다. 그것이 제가 여러분께 이 이야기를 해 드리는 까닭입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주기철 목사님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사모님에 대해서는 거듭 말씀드리지만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그러나 당시의 산정현교회 교인들은 목사님보다 사모님을 더 잘 알고 있었다 합니다. 목사님은 경찰서와 형무소를 드나드느라 사모님보다 교회를 지키는 기간이 짧았고, 일제에 의해 교회가 폐쇄된 뒤에도 사모님은 남편을 대신해 심방을 다니는 등의 방법으로 교인들이 신앙을 지키는 데에 사력을 다했던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남편을 팔아먹는 아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안 됩니다

목사님이 순교하기 얼마 전이었습니다. 일제는 신사참배 거부로 인한 옥중성도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가족을 이용하기도 했는데요, 한번은 경찰이 사모님과 나이 많으신 어머님에 열 살 난 막내아들 광조를 지하의 취조실로 불러들여 그 앞에서 목사님을 고문했습니다. 두 손을 뒤로 묶어 공중에 매달고는 발로 차고 목검으로 치기도 하면 마치 그네처럼 흔들리는 그런 고문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을 본 노모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사모님은 ‘주님’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목사님이 기절했습니다. 깨어나자 이번에는 사모님을 같은 방법으로 고문했습니다. 고문자의 발길질이 계속되자 목사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주님’만을 연신 불러댔습니다. 부부는 고문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견뎠습니다. 어린 광조로서는 아버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머니까지 그리하여 더 심한 고문이 이어지는 것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사실을 말하면 이때의 목사님은 산정현교회의 목사가 아니었습니다. 일제가 목사님을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해임시키려는 목적으로 네 번째 검속을 하자, 그들의 앞잡이가 된 평양노회는 때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파면했습니다. 1939년 12월 19일이었지요. 그리고 그 다음 달 24일에 가족을 사택에서 내쫓았습니다.
사모님으로서는 늙으신 시어머니와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로 내쫓기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육로리에 셋집을 얻었는데, 1940년 4월에 잠시 가석방된 목사님이 돌아온 것도 이 셋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여름 마지막으로 검속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꽁꽁 얼어붙은 혹한의 동토에도 봄이 왔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요원하기만 한 것처럼 생각됐던 광복을 맞은 것이지요. 그러자 우상숭배에 동참하는 등으로 변절됐던 교계, 교회들은 주기철 목사의 우상화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신사참배를 하여 우리의 교회를 지켰다 한 뻔뻔한 사람들 중에도 그런 자들이 있었지요. 
산정현 교회에서는 목사님의 동상을 세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모님은 ‘왜 주 목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하느냐’며 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교회가 토지를 사 주어 소작으로 유족들이 편히 살 수 있도록 일을 진행하자 이 또한 두말이 나오지 못하도록 이런 말로 막았습니다.
“물건에 의지하면 신앙이 적어지기 때문에 안 됩니다. 남편을 팔아먹는 아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안 됩니다. 제 아비를 팔아서 크는 자식은 병신처럼 될 것이니 자력으로 일어서도록 길러주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남에게 의지하는 일은 절대 안 됩니다.”
사모님은 해방의 기쁨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너무도 빠른 1947년 1월에 하늘나라로 부르심을 받는데요, 그러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김일성 장군이 보냈다는 장교 두 명이 찾아와 상자 두 개를 내려놓았습니다. 전답과 적산가옥 문서, 지폐가 가득 든 상자였지요. 평양에서 정부를 수립한 김일성이 주기철 목사의 순국의 뜻을 기린다며 보낸 포상금품이었지요.
그러나 사모님은 이 또한 이런 것을 받으려고 목사님께서 순교한 것이 아니니 받을 수 없다 극구 사양하며 그대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10대 중반의 막내아들 광조는 불만스러운 표정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이 유난스럽게 보였던 거였겠지요.
사모님은 그런 막내아들 광조에게 성경 한 구절을 찾아 읽게 했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시37:25-26)
이 일을 훗날 장로가 된 광조는 “남하해 홀로 살아가면서 그 때 큰돈을 받지 않은 어머니가 많이 원망스러웠지만, 그 시편이야말로 부모님께 누가 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게 한 ‘위대한 유산’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는군요.
사모님의 죽음은 유방암 때문이었는데요, 그때까지의 병중 모습을 장기려 박사가 지켜봤습니다. 수술을 받게 되자 사모님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겪은 고통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며 마취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집도의로서의 장 박사는 그럴 수가 없어 속이고 마취 후 수술을 했지요.
투병과정의 사모님은 한 순간도 하나님과 분리됨이 없어 환한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느니라”라는 말씀으로 시작된 히브리서 11장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등의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장기려 박사는 사모님을 이 히브리서 11장에 추가될 만한 믿음의 영웅이라고 말합니다.
목사님이 순교하자 평양 돌박산 기독교 공동묘지에 안장했는데요, 그 묘소에 비석을 세우는 것조차도 사모님은 아니라 거절했고, 광복을 맞자 평양노회가 목사님과 그 가족들에게 저질렀던 행위에 대해 사과하며 ‘주기철 목사 순교기념예배’를 드리겠다는 것도 거절했습니다. 교인들이 예배드리러 교회에 왔으면 하나님께만 영광을 드리고 찬양하고 경배해야지 주 목사가 그것을 가리는 존재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부자들의 배를 불리는 사람들

여러분, 오래 전에 크게 힛트를 쳤던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는 가사의 유행가 있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요, 오정모 사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제 자신이 그렇게도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앙의 큰 인물들을 대할 때면 느끼게 되는 감정이지요. 자기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그리스도의 빛만을 발하는 인물에겐 그런 위대함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요, 그런 위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기도! 맞아요. 기도에서 나온 것이지요. 기도가 뭐기에 하나님의 아들로 당신이 곧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도 그렇게 힘들여 기도를 드렸을까요.
기도는 능력이지요. 말씀을 말씀되게 하는 능력,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하는 능력이지요. 믿는 사람들은 능력이라면 흔히 병을 고치거나 전도하는 등의 힘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그런 면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능력의 본질은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힘,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능력이지요. 사모님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사모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금식기도를 밥 먹듯이 했습니다. 잦은 금식기도로 몸이 쇠약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모님께서는 빛이 났습니다. 믿음의 빛, 그리스도의 빛이 났습니다. 귀신이 들려서 미쳐 날뛰던 사람이 사모님 앞에서는 양처럼 순해지기도 했습니다.
여담인데요, 저도 그와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시골의 모교회에서였는데, 아직 청년시절로 부흥회 기간이었습니다. 교회당 옆 사택의 한 방에 강사목사님을 중심으로 열 명 안팎의 교인들이 둘러앉았는데, 거기에 귀신들린 한 여자도 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 여자를 위한 기도 자리였지요. 여자의 남편 말에 의하면 제 정신이 아닌 아내가 걸핏하면 점쟁이를 찾아가 그러는 것보다는 교회가 났겠다 싶어서 데리고 왔다 했습니다.
여자는 영 분별하는 능력이 없는 저 같은 사람의 눈에도 누구의 눈에도 귀신 들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어둡기 한이 없는 얼굴에 눈은 독사의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사 목사님의 기도가 끝나자 그녀의 눈은 비둘기 눈처럼 순하고 부드러워졌습니다. 몸가짐도 얌전해졌습니다.
저는 물론 신비주의자가 아닙니다. 아니나 조심스럽게이기는 하지만 신앙상의 초현실적인 현상도 부정하진 않습니다. 이 또한 말하려 들면 한이 없을 테니 이 정도로 해 두겠습니다.
어떻든 여러분께서는 이 오정모 사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혹 읽으시면서 오늘의 교회들, 크리스천들과 비교가 된 것은 아닌가요. 저는 쓰는 내내 비교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 코로나19 사태에 말썽을 부려 세간의 지탄대상이 된 교회나 단체들, 그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떠올라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을 좀 점잖게 하려다 보니 말썽이지 그들의 행태는 악행, 그것도 심각한 악행이지요. 이웃의 건강,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야 말로 악행을 넘어선 범죄요 죄악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들에게 정말이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자기네의 육적 이익을 얻으려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니 그나마 이해가 되는 면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를 추종하여 따르는 사람들은 왜일까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논리적이지도 않고 반 기독교적이라는 것을 보통사람들이라면 다 아는데, 그들만은 왜 그런 엄연한 사실을 모른 채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그들의 배를 채워주는 어리석은 춤을 추는 것일까요.
부유층을 대변하는 정치집단을 응원하는 서민들과 같은 면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정치집단이야 자기들의 이익이 있으니 부유층을 위해 일을 하지만, 서민들은 그들에 박수를 보냄으로 자기의 호주머니에서 물질이 새어나가 부유층의 부유를 돕는 것이 되는 게 아닌가요. 물론 세상만사가 그처럼 단순논리로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든 큰 맥락에서 보면 틀림없는 사실이잖아요. 
저는 전자의 종교집단도 후자인 정치집단을 응원하는 서민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혹 명쾌한 해답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알려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공주아빠 21-02-06 11:40
 
사랑과 행함이 있는 오정모 사모님을 이글을 통해 알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율리아나 21-02-08 18:27
 
성경적 가치관에 따른 바른마음을 가지고 오정모사모님처럼  그 삶의길따라 가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감동했습니다!!
두필님 21-02-10 09:02
 
교수님의 글을 읽고 두집단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봄날 21-02-10 10:57
 
오정모 사모님의 삶이 제 인생의 방향을 잡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어렵지만 조금씩 그 길을 따라가보고 싶습니다.
행복가득 21-02-10 12:34
 
세상사람들은 자기네의 육적이익을 얻으려는 것으로 충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만 영광을 드리고 찬양하고 경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내는 존재로 살다가신 주기철목사님과 오정모 사모님이 가신 길을 기억하겠습니다.
훈훈 21-02-10 15:33
 
많은 교회들이 주기철 목사님과 오정모 사모님 처럼 올바른 신앙심을 갖고 나아가길 바래 봅니다.
임성재 21-02-13 23:05
 
주기철 목사님과 오정모 사모님의 참된 신앙이 현재의 교회가 반성해야 될 점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준 것 같습니다.  좋을 글귀를 읽게 되어 감사합니다.
유진짱 21-02-14 09:10
 
주기철 목사님과 오정모 사모님처럼 올바른 성경 가치관이 많은 교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좋은 말씀의 글은 널리 널리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규연애비 21-02-15 17:41
 
저 또한 올바른 신앙심을 갖기를 바라며 대한민국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모든이들이 이와같은 글을 읽었음 하는 바램입니다
소피아 21-02-18 10:47
 
오정모 사모님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과연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현 기독교의 행태에 부끄러워지는 것도 사실이구요
영미 21-02-19 22:53
 
사람들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했던가요
주기철 목사님의 바른 심성이 그에 맞는 오정모 사모님을 만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 글을 통해 가리워져 있던 오정모 사모님의 행보를 알게되니 진심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많은 고난과 힘듦이 삶 전반에 있었을텐데도 불구하고
그 바른 심성과 하나님의 깊은 신앙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고 갈 수 있었다는게
저로서는 정말 믿기도 힘들고 참으로 대단하다 느껴집니다.
지금 삐뚤어진 마음으로 기독교를 믿고 따르는 분들이 이 두 분의 바른 신앙심을 반 만이라도 닮아갈 수 있다면 우리나라도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다영 21-03-11 11:04
 
이 글을 통해 오정모 사모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교회가 이 두분의 깊은 신앙심을 본 받아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올바르게 잡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