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12 17:08
인간 중에 도태되어야 할 사람은 없다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글쓴이 : 안타레스
조회 : 655  
인간 중에 도태되어야 할 사람은 없다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 <박은석 기자 시국기도문>을 읽고 ―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이라고 하나님을 부름으로 시작되는 기도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도 아닌,
연이어 부르는 그 부름에서는
기도자의 무엇인가의 절박함이 묻어나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기도자가
그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드리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코로나19, 그래, 코로나19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좋지 않은가.
지구촌 모두가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그것이 빨리 소멸되어 이 사태가 하루라도 빨리 종식되기를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와 나의 생각일 뿐,
기도자는 그와는 다른 것을 기도하고 있다.
그 기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지금까지 6개월 동안 우리나라 코로나19 폐렴 확진자가 11,668명인데,
2018년도 우리나라 폐렴 확진자 수는 무려 143만 명이 넘는 것이었다.
그리고,
평년의 폐렴 치사율:&nbsp;1.7%
코로나19 폐렴 치사율:&nbsp; 2.3%
결국 0.6% 차이,
그에 반해,
서울대병원이 공식 발표한 사스 폐렴 치사율: 15%
서울대병원이 공식 발표한 메르스 폐렴 치사율:&nbsp; 28%
라는 것이다.

폐렴 치사율이 1.7%이고,
코로나19 폐렴 치사율이 2.3%라면
둘 사이의 차이는 불과 0.6%인데,
그것도 사스나 메르스 치사율과는 비교도 안 되게
코로나19 치사율이 낮은데,
그런 것을 가지고 “온통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민주주의 기본을 유린하며,
온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한다는 것이다.

고작 0. 몇%의 차이를 가지고
“나라가 이 난리를 치며 국가경제를 파탄 내며
민주주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겁니까?”
라고 절규하듯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당연히 갖게 되는 의문이 하나 있다.
기도자가 다른 것은 비교를 하면서
왜 그 전염력, 전파력에 대해서는 함구하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코로나19의 전염력은 가히 가공할만하다.
국민들은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무증상 감염자가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활보로 이동을 이어간다면
그 전파 속도는 무서울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 사례를 우리는 불과 얼마 전에 우리의 대구에서 보았다.
지구촌 처처에서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시체가 넘쳐
냉동차에, 또는 아이스링크에 쌓이고,
불법 매장이 이루어지는
그 참혹한 현실을 불과 얼마 전에 보았다.

기도자는
“하나님, 이제 성도들이 눈을 뜨고,
코로나19 사태 배후에 무엇이 있으며,
무엇 때문에 온 세계가 코로나19로 들썩이고 있는지,
그 실상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 기도한다.

그러며
“정부는 총선을 앞에 두고 먼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던 집회와 시위를 금지시켰었고,
사람이 모이는 것을 거부하게 하였으며,
그 결과 경제는 파탄이 났고,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되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라고 한다.

정부가 총선의 득표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코로나19를 이용해 집회와 시위를 금지시킴으로
경제를 파탄 냈고,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의 독자인 그대와 필자인 나 같은 보통사람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나날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위축되어,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지지하였고
이를 당연시 여기게 되었으며,
그것이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아니 바보취급을 한다.
“오늘까지 내가 눈 뜬 시민인 줄 알고 있었는데,
실상은 눈을 뜬 적도 없이, 눈 뜨고 있는 꿈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며,
“실은 내 눈은 한 번도 쓴 적도 없이 처음부터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대와 나를 포함한 보통사람들이
한 사람의 기도자에 의해
졸지에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눈을 가진 눈먼 사람이 된 것이다.

기도자는 다대수의 국민을
‘정신 차리지 않는’ ‘자본과 권력의 노예’라 단정하고,
언론에 대해서는 ‘자본과 권력의 하수인’이라고 정의하는데,
“코로나19 관련 보도로 미디어를 도배하다시피 하여,
과거 군부독재시대의 땡전뉴스와 같이,
사회의 중요한 뉴스들이
가려지고 있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 관련 보도가 과도하게 많아
이로 인해 다른 중요한 뉴스들이 가려지고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게 과거 군부독재시대의 땡전뉴스와 같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땡전뉴스가 무엇인가.
‘땡’하고 뉴스를 알리는 시보가 울리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이라는 말로 시작했던 뉴스다.
‘땡’하는 시보와 함께 ‘코로나19…’로 시작된다는 면에서는 같다.
그러나 코로나19 관련 뉴스는 강제하는 힘의 작용을 받지 않는다.
땡전뉴스처럼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잡아다 족치는 일은 없다.
전적으로 언론 의지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시청률을 올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여긴 까닭이다.
국민들의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왜?
왜 확진자 수가 폐렴의 십분의 일에도 못 미치고
치사율로 보면 사스나 메르스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적은
코로나19에 국민들의 관심이 그토록 큰 것일까.
기도자의 말처럼 국민 다대수가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눈을 가진
눈먼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코로나19의 가공할만한,
그 무서운 전파력 때문이다.
만약 기도자의 말처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무도 끔찍하여 생각조차도 하기 싫다.

그렇다고 하나의 기도문에 대해
이렇게 이러쿵저러쿵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여기까지 만이라면 필자도 굳이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기도자가 기도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자 필자로서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나님을, 예수를 믿는 사람인 이상
그게 아니라고 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없고,
설령 욕을 먹는 한이 있다 해도 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도자는 이렇게 기도 한다.
2019년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도 대한민국 사망원인을 보면
23,280명이 폐렴으로 사망했는데,
“이렇게 흔하게 퍼져있던 폐렴은
자연계가 면역력이 약한 생물을 도태시키기 위한,
생태계의 균형 장치였던 것입니다”
라고 기도한다.

필자는 이 문장을 읽고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읽고 또 읽었다.
그래도 너무도 중대한 사안이기에
혹 하는 생각에 지인들에게 복수로 전화를 하여
당당뉴스에 들어가서 읽어 봐 달라 부탁했다.
그들의 생각도 필자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폐렴은 자연계가, 생태계가
면역력이 약한 생물을 도태시키기 위해 마련한 균형 장치라니,
필자는 이 말이 뜻하는 바를 확인하자
너무도 놀라워서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요컨대
‘면역력이 약한 생물’이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약자나 지병이 있는 사람,
임산부까지를 싸잡아 한 말인데,
아무런들 임산부까지야 그 범주에 넣었겠는가.
노인이나 병이 있어 허약한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병들거나 나이가 많아지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가지고
‘온 세상이 이 난리를 치고 나라에서도 난리가 났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 다대수가 눈은 떴으나 눈이 멀었다는 것이다.
바보도 그런 바보들이 없다는 말도 된다.

마스크를 쓰거나 손 소독을 하고 거리두기를 하는 국민들은
눈이 먼 사람이요 바보라는 것이다.
이 더위에 천막 진료소에서 3kg의 방호복을 입고
쓰러지기까지 하는 의료진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눈이 멀어도 가장 심하게 먼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면역력이 약한 생물’이 무엇인가.
‘면역력이 약한 인간’ 아닌가.
인간도 생물임은 틀림없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면역력이 약한 생물’이라니
표현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인데,
필자의 생각이 지나치는가.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역시 인간도 생물임이 틀림없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면역력이 약한 인간은 도태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천부당만부당하다.
죄악의 극치이다.
그것도 자연계와 생태계를 누가 주관하는가.
천지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 아니신가.
그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신가 말이다.

하나님은 강자도 약자도 다 사랑하신다.
그러나 약자에 더 관심이 크시다.
성자 하나님 예수께서는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5)라고 말씀하신다.
기도자가 말한 ‘면역력이 약한 생물’
곧 ‘면역력이 약한 인간’이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인데,
이 무슨 괴리라는 말인가.

필자는 기도자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애원이라도 하고 싶다.
아니라고,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 해도
도태 대상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회에 극악한 피해를 끼치는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사회와의 격리는 맞지만 도태의 대상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만약 면역력이 약한 인간은 도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쳐 갖는다면
무릎이라도 꿇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다.
생인손을 앓는 손가락이 더 신경 쓰이는 법 아닙니까,…
무슨 말씀이라도 드려 보고 싶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16:26)

- 충남대 명예교수 임종석

두필님 20-06-16 23:01
 
도태되는 사람없이 모두가 평등할 수 있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희망합니다~
이다영 20-06-16 23:08
 
교수님의 말씀처럼 저도 인간중에 도태되어야 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미 20-06-18 23:56
 
도태라니요,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너무도 약하니 당연히 면역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약한 사람이지요
나이 들어 병이 들면 당연히 면역력이 떨어지니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구요,
누구나가 거쳐오고 거쳐가야 할 시기들이 아닐런지요
세월이 흐르면 그 자신들 또한 약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제발 정신들을 차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인지를 깨닫고 행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공주아빠 20-06-19 21:50
 
가장 낮은자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사랑에 다시한번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어느 누구 하나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여 주심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훈훈 20-06-22 14:08
 
인간은 모두가 평등한데 도태라는 말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에게 평등하시고 오히려 지극히 낮은 자에게 더 사랑이 많으신 분인데..
그 분의 뜻을 따라 모두가 옳바른 길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윤지 20-06-30 16:26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없는 것처럼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손길이 널리 퍼지길 소망할 뿐입니다.
행복가득 20-06-30 18:56
 
누가 누구를 없어져야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느 누구도 타자를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까지 주셨으니까요
유진짱 20-07-04 00:33
 
아무리 흉악한 인간이라도 그 죄를 뉘우치고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에 존엄성이 부인되거나 거부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규연애비 20-08-20 17:33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다쓰임새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세상에 도태되고 뒤쳐지는 사람은 없다고 하는말에 매우 공감이 됩니다.